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송문헌 산행시집 ‘백두대간 언저리’

김창집 2014. 8. 5. 12:29

 

송문헌 시인의 산행시집 ‘백두대간 언저리’를 보내 왔다.

‘도서출판 움’에서 발간한 이 시집은

2006년 12월 2일부터 2008년 12월 6일까지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그 언저리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시로 엮은 산행의 기록이다.

136쪽 정가 10,000원.

 

제주에 살면서 그나마 좋아하는 산 정상을 찾아 점을 찍으면서

순서 없이 오르내린 나로서는 부러움과 존경스러움을 금치 못하며,

그 동안 능선을 계속해서 이어나간 산행시를 읽으면서

몇 편 골라 7월말에 다녀온 태백산 사진과 곁들인다.

제대로 하려면 시에 맞는 사진을 골라 실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고 이번은  장마중의 산행이어서 바람과 안개만 가득해

제대로 된 사진이 없어 송구하다. 

 

 

♧ 송문헌 시인은

 

충북 괴산 출생으로 아호는 아성阿星.

1992년 ‘천평시’에 ‘진달래 만발’ 등 12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눈이 내리면 외포리에 가고 싶다(1996년)’,

‘아라리는 아직도 이 거리에 있다(2003년 시와시학사)’,

‘그물에 걸린 바다(2005년 시문학사)’,

‘바람의 칸타타(2008년 시현실)’,

‘그리운 것은 눈 속에 있다(2010년 시문학사)’ 등이 있다.

 

제33회 현대시인상을 수상(2010년 사·한국현대시인협회)했으며

자작시 가곡(이수인 곡) ‘별빛이 흐르는 밤에’ 등 70여 곡이

음반으로 발표된 바 있다.

 

 

♧ 시인의 말

-예순둘에 백두대간을 넘다

 

백두대간 종주 전문 산악회에서 격주 주말마다

40여 명이 시작한 2년여의 종주산행 내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제일 먼저 홀로 완주증을 받게 된

백두대간 종주 산행이 어찌 보면 부질없는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바람 치는 날도 눈보라

얼어붙던 한겨울에도 함께 산을 오르내리던

대간꾼 산우들, 어디선가 내달릴 삶들에게 묵묵히

너른 품으로 맞아주던 백두대간의 산하처럼

세상살이가 그렇게 이어지길 기원해 본다.

시집 출판 비용을 부담해준 두 아들아, 고맙다!

 

2014년 초여름

송문헌 

 

 

♧ 태백산

 

동악 토함산, 서악 계룡산, 남악 지리산, 중악 팔공산과 더불어

신라 오악(五嶽)으로 추앙받던 우리민족 영산,

크고 밝은 뫼, 북악 태백산(太白山, 1,566.7m)은

둘레 27m, 폭 8.26m, 높이 3m의 20여 평의 원형제단

천제단은 해마다 하늘에 제를 지내는 곳,

위는 원형 아래로는 사각

‘하늘은 둥글고 땅은 각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동양사상이라네

삼국시대 이전부터 민족의 명산으로 추앙받은 산,

환인(桓因)의 아들 단군(檀君) 아버지인 환웅(桓雄)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웠다는 옛기록이 있다네

‘삼국유사’ 고조선편 기록엔 3,000여 명을 거느린 환웅께서

태백산 정수리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라 했다네

우리말로 ‘한배달’, ‘반박달’, 한밝매‘ 등 성지로도 추앙받는 천제단을

조금 내려서면 ‘죽어 태백산신이 되고 싶다’던

단종의 유언을 모셔놓은 주산신(主山神)

단종비각이 있다네 

 

 

♧ 가을이면 은빛 억새 파도치는 산

  -성삼재-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리

 

가을이면

은빛 억새능선이 파도를 탄다는 만복대 산길

바람 같은 추억 한 줌 꺼내 뒤돌아보니

천왕봉이 그새 그리움으로 아득하네

 

만복대 동쪽사면은 완만한 심원계곡 남원,

구례, 운봉에서 오르는 서쪽사면은 급경사를 이룬 천연 요새

옛적엔 마한의 피난 왕조와

근세엔 빨치산들이 진을 치고 버티던 곳이라네

 

기원전 84년경 마한의 왕이 진한, 변한의 침략을 막으려고

정鄭장군이 지켰다는 곳,

정령치鄭嶺峙, 고갯마루엔 찬바람만 세찼네 

 

 

♧ 세석평전

 

산비탈 흐드러진 철쭉꽃밭

그 옛날 꽃을 가꾸느라 피가 맺힌

한 여인의 열 손가락처럼

온통 핏빛이네

 

아득한 옛적

자식이 없던 여인 반달곰의 꼬임에 빠져

소원성취를 해준다는 음양수를 마시고

노한 산신령

“너는 평생 세석평전에서 철쭉을 가꿔라.”

지엄한 명령에 지금의 광활한 철쭉평전이 되었다네

 

늦은 어스름 달빛이

철쭉꽃밭을 떠도는 애처로운 영혼을 지키고

덩달아 잠을 뒤척이는 산객들로

세석의 밤은 꽃잎처럼 붉었네

   

 

♧ 제석봉

 

제석봉에 오르니 황량한 초원

바람에 피가 마른 고사목들

옛 자태를 증명하듯

우람한 체구의 장수처럼 곳곳에 서 있네

 

무자비한 도벌꾼 손에 사라진 원시림

그 황량한 봉우리를 넘어서자

해발 1,750m 장터목

봄가을 이곳에서 남쪽 시천 주민과 북쪽 마천 사람들

생산품을 이고 지고 와

서로 나누던 그 장터

그 사람냄새 다 어디로 갔는가

입을 다문 옛 장터는 고즈넉하네

 

숨차게 다시 오르막 촛대봉에 오르니

여신의 엉덩이를 닮았다는 반야봉을 뒤로

작은 돌이 많아 잔돌평전이라 부르던

세석평전이 어서 오라 너른 품을 열고 있네  

 

 

♧ 통천문

 

제석봉을 향해 천왕봉을 내려서는 너설길

부정한 이는 누구도

통과하지 못한다는 어둑한 바위굴

그 앞에 이르자 저절로 겸허해지네

 

세상 때 묻은 초로의 몰골

천상의 법정 앞에 낡고 녹슨 피고인은

이곳 하늘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는지

찰나에 스치는 지난 시간들 불현듯 고개를 드네

 

엄정한 심판을 지나

바위굴을 내려서자 햇살이 살갑게 맞아주고

저마다 큰일이라도 해낸 듯 싱글벙글

줄줄이 기운차게 새벽 산길을 내려섰네

 

 

♧ 이젠 모두 비우라 하네

    -미시령-마산-진부령

 

백두대간 우리 산하 남녘 마지막 구간,

설레는 맘으로 들머리 미시령을 오르고 올라

오래지 않아 산정봉에 이르고 발걸음 힘차게 대간령을 지나

최종 산봉(山峰) 마산에 올라서니 지나온 2년 주마등처럼 스쳐가네

여기까지 무탈하게 허락해준 무수한 준령과 산마루에게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아 감사 드렸네

숱하게 오르내린 산처럼 지난 날들 불현 떠오르네

청청하게 텅 빈 겨울 하늘이 이젠 모두 비우라, 비우라

티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저 멀리 아슴한 향로봉은

군작전지역 갈 수 없는 산, 실제로 이곳이 마지막 구간인 오늘

나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지…

한참을 서서 진부령과 묵묵히 작별을 하고

아직은 완주를 못한 산우들에게도 부디

산도 삶도 모두 무사 종주하시기를

기원하며 진부령으로 내려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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