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여름호와 맥문동

김창집 2014. 8. 6. 11:11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통권 45호)가 나왔다.

특집은 -‘니이카타’로 다시 읽는 김시종-으로

두 일본 작가의 발표문과 작가 자신의 발언, 그리고 토론을 실었다.

'작가를 찾아서’는 잘 알려진 시조시인 회원 '홍성운' 편을,

‘공감과 연대’는 아프리카 가나의 신인이자 교육자인

코피 아니도호의 글을 실었다.

 

그리고 이번호부터 선을 보이는 두 편의 연재물,

하나는 ‘제주 만인보’로 제주섬에서 살아가는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 엮는 대담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교직에서 명예퇴임한 김광렬 시인의 ‘길따라 떠나는 제주기행’이다.

이외로도 많은 시와 시조,

산문과 소설, 동화까지 두루 싣다 보니,

원고가 다음호로 이월될 정도로 두껍다.

 

시간이 없어서

몇 편의 시만 읽고

요즘 한창인 맥문동 꽃과 같이 올려본다. 

 

 

♧ 거기 - 홍성운

 

시루떡 같은 파도

무시로 부서지는

 

그대

작은 발자국

아직

온전하여

 

갯방풍

꽃노을 진다

 

모래둔덕

 

거기! 

 

 

♧ 물에서 온 편지 - 김수열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고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긴 지번을 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낸다

 

아들아,

올레 밖 삼도전거리 아름드리 폭낭은 잘 있느냐

통시 옆 먹구슬은 지금도 토실토실 잘 여무느냐

눈물보다 콧물이 많은 말잿놈은

아직도 연날리기에 날 가는 줄 모르느냐

조반상 받아 몇 술 뜨다 말고

그놈들 손에 질질 끌려 잠깐 갔다 온다는 게

아, 이 세월이구나

산도 강도 여섯 구비 훌쩍 넘어섰구나

 

그러나 아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이제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육신의 칠 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냐

나머지 삼 할은 땀이며 눈물이라 여기거라

나 혼자도 아닌데 너무 염려 말거라

 

네가 거기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없듯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없어

그게 슬픔이구나

봉분 하나 없다는 게 서럽구나 안타깝구나

그러니 아들아

바람 불 때마다 내가 부르는가 여기거라

파도 칠 때마다 내가 우는가 돌아보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내거라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어도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기 꽃소식 사람소식 그리운 소식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너울너울 보내거라, 내 아들아 

 

 

♧ 시멘트 벌레 - 김경훈

 

만약에

시멘트 녹이는 벌레 있다면

나 그 벌레 되어

저 케이슨 온몸으로

녹이리

거대한 댐이 구멍 하나로 무너지듯

그렇게 해군기지 방파제 무너뜨리리

파도와 더불어

바람과 더불어

흐르고 흘러

온 세상 살생의 시멘트 다 녹이고

나 또한 처절히

녹으리

 

 

♧ 일몰 - 김문택

 

우르르 몰려와서

해 잡아가는

저 어둠,

우르르 몰려와서

아버지 잡아가는

빚쟁이 같다

 

해가 쉬어간다

온종일 걸어온 하늘 길,

따뜻한 사랑

땅에게 주고

식물에게 먹이고

어미는,

아랫목 찾아

몸 달구려 간다 

 

 

♧ 깊은 밤 눈을 뜨니 - 오영호

 

깊은 밤 눈을 뜨니 창문이 훤하네요.

문 열어 밖을 보니 열사흘 밝은 달이

쌓이고 쌓인 적막을

반질반질 닦고 있네요.

 

 

♧ 바다까지 이상해 - 고정국

 

썰물 때 ‘밀물’이라고

우적우적 우기는 바다

 

밀물이 올 때까지

양쪽 눈치를 살피더니

 

어느새 “밀물이잖아…”

권력 쪽에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