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8월호와 수련

김창집 2014. 8. 8. 00:12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우리詩’ 8월호가 나왔다. 8월 23~4일 문경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리는 ‘2014년도 우리詩 여름시인학교 안내’가 있고, 권두 에세이로는 김금용 시인의 ‘배우고 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를 실었다.

 

  신작詩 17인選은 김석규 서량 장문석 송문헌 나병춘 박정원 정용화 권순자 박은우 김영희 이재부 서대선 이사랑 박홍 최병암 한문수 김사리의 시를, 특별기획 연재시는 홍해리의 치매행致梅行 시편(3), 詩誌 속 작은 시집은 민구식의 ‘젓가락’외 6편과 유진의 해설을, 테마가 있는 소시집은 홍예영의 ‘종이컵’외 12편을 시작노트와 함께 올렸다.

 

  ‘시 감상 시집 해설’로는 박정원의 시 ‘생명, 그 고요한 우주 속으로’를 감상하고 이동훈이 박승류 시집 ‘맷집’을 해설했다. 한시한담은 조영임의 ‘호서 제일의 누각, 청풍의 한벽루’, 양선규의 ‘인문학 스프’는 ‘작은 것도 크게 쓰면’을 싣고 있다. 시 몇 편을 골라 수련 사진을 곁들인다. 

 

 

♧ 그리운 저녁 - 김석규

 

  어머니가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옷에 묻은 까끄라기를 털어내는 저녁이다. 하루의 노동은 신성하고 거룩하였으며 흘린 땀방울은 비록 가난하지만 일용할 알곡은 황금으로 빛났다. 도란거리며 오르는 굴뚝의 푸르스름한 연기는 멀리까지 따뜻하고 두레상머리 둘러 앉아 퍼 올리는 밥숟갈소리 정겨운 저녁엔 개밥바라기별도 와서 한 술 거들었다.  

 

 

♧ 인형의 눈 - 서량

 

안개가 그득해 안개는 서두르지 않고 나를

지나친다 내가 보는 큰 눈이 내 눈을

샅샅이 살핀다 눈알이 스르르 움직이네

투명한 설정의 startup program!

 

내 혼백이 어디에 박혔는지 궁금하다 빤히

쳐다본다 인형이 턱으로 말하는구나

아무렴 무슨 말이면 어때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당신

 

You'd say, "Anyway..."

I'd say, "Beware the stare of Mary Shaw!"

 

메리 쇼의 영혼에 몰입한다 사람과

인형과의 교감이 치열하군요 어쨌든 달빛을

가로지르는 밤공기의 떨림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탓하지 못합니다 혀가 완전히 얼어붙었어 그건

금방 스러지는 파문이었어요 그건 슬프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은 동작이었어요 전혀 

 

 

 하염없는 봄날 - 송문헌

 

나른한 시간이 흐르는 한나절

햇살 가득 눈부시게 밀려드는 봉당에

하릴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꿈인 듯 졸음이 밀려오고

 

얼핏 스산한 바람이 댕겨 가는지

덥수룩한 수염을 잡고 흔들며 히죽

담장너머 옆집 목련이 좀 보라 하네

 

주책 같지만, 속없이 어제보다 더

희디흰 홑적삼을 열어 보이는 그가

벼락을 치도록! 오늘따라 여간 더

요염하지가 않아 보이네 

 

 

♧ 꽃 - 나병춘

 

나는 고요 속에 피어나는

한 송이

풀꽃

 

미세한 떨림 속

미로 찾아 날아드는

벌나비의 춤

햇살 바람 이슬방울

한통속으로 어우러지는

아득한 메아리

 

가만히 귀 기울이면

시냇물소리 파랑파랑

초록초록 풀벌레 소리

그 애절한

파란 반짝임 속에서

피어나리라

 

진정한 사랑과

평화의 나라

어둠 뚫고 안식하리

나는 한 줄기

찬란한

 

 

 

♧ 비빔밥 1 - 김영희

 

바다에 들어앉은 계란 프라이를 건져 올리고

밤새 철썩였다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어요

선홍빛 육즙이 달콤한 달달함이 필요해요

초록으로 물든 프라이는 싫어요 

 

 

♧ 약속 - 홍해리

     --치매행 23

 

언제 여행 한번 가자

해 놓고,

 

멋진 곳에 가 식사 한번 하자

해 놓고,

 

봄이 오면

꽃구경 한번 가자

해 놓고,

 

지금은

북풍한설

섣달그믐 한밤입니다. 

 

 

♧ 부석사의 봄 - 민구식

 

운무를 헤치며 오르는 새벽

입김이 길게 앞서 간다

 

안양루(安養樓)에 올라서니

범종소리 사람을 접는다

 

마루금 저쪽 태백산 끝자락

새벽안개 걷어내며 달려온 종소리

밤새 익힌 경전 한 줄 건네자고

종은 얼마나 두들겨 맞았을까

 

얽히고 설킨 속 두드리고 흔들어

뼈 속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도

맘 속 풍경(風磬) 한 뜸 울리지 못하면서

절뚝절뚝 봄이 가고 있습니다

 

무량수전 추녀 끝에

천 개의 소리 매달리고 있습니다 

 

 

♧ 종이컵 - 홍예영

 

가루가 채워지고

뜨거운 물이 내려오고

낯선 얼굴과

쏟아지는 격정으로 입술을 포갰다

 

종이와 컵 사이

순간이었다

이름을 가졌던 것은

 

마지막 방울까지 털리느라

거꾸로 기울어지고 나면

이제 구겨지고 던져질 차례

 

다시

컵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