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다시 찾은 추자도

김창집 2014. 10. 21. 00:27

 

▲ 2014. 10. 19. 일요일. 쾌청

 

 아침 9시반. 우리를 태운 정기여객선 핑크돌핀호가 제주항을 뒤로 하면서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예정대로라면 1시간 10분 후인 10시 40분에 상추자항에 우리를 내려줄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 한라산을 비롯한 제주도의 전모를 찍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아침은 그늘이 져서 옅은 안개와 함께 실루엣 차원밖에 안 된다.

 

 배가 쾌속정이고 세월호 사고 이후, 당국에서 단속을 심히 한다는 이유로 항해 중에는 선실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답답하다. 배가 추자, 진도를 거쳐 목포까지 가는 배라 손님이 가득 차 아예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 옆에 멀미하는 일행을 다독이며 가기로 한다. 안전을 위해 앞쪽 유리창을 플라스틱 제품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긁혀버려 제대로 바깥 구경은 물론 사진도 찍을 수 없다.

 

 작년 11월에 답사를 기획하였다가 배가 안 뜨는 바람에 법정악에서 단풍 구경하고 모슬포에서 방어회로 때운 후 갖는 행사라, 이번엔 좋은 날씨 때문에 덩달아 기분이 좋은 얼굴들이다. 이번에 참가 신청은 40명이 했다가 세 분이 못 오게 되어 37명만 참가한 탐문회 회원들은 대부분 한 달 전에 울릉도에 다녀온 분들이다. 독도까지 좋은 날씨에 다녀온 터라 모두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창문 너머로 추자섬들이 보인다. 작년 10월에 가서 맛있는 삼치를 먹었기에 이번에도 그 맛을 기대하며 배에서 내린다.

  

 

△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하는 추자도

 

 추자도는 42개 도서로 형성되어 있는 행정적으로 제주에 속하는 다도해라 할 수 있다. 추자면사무소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어족과 풍부한 어장을 갖춘 해양자원의 보고이면서, 청정한 해양환경을 보유하고 있어 바다낚시의 천국’이라 자랑하고 있다. 추자면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서기 662년 신라의 문무왕 때와 백제시대에 탐라가 예속되어 조공이 있었던 점을 미뤄 제주에서 육지를 왕래하던 선박들이 해상의 중간지점인 추자도를 후풍지점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후 조선조 성종 때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 ‘제주목’편에 추자도 부분이 나오는데, 거기에 추자는 제주목의 북쪽 바다에 있고, 주위가 30리이며 수참(水站)의 옛터가 있다고 했다.

 

 그로 미루어 이섬에는 그 시대 이전에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할 수가 있으며, 같은 기록에 고려 원종(元宗)11년 삼별초(三別抄)가 진도를 거쳐 탐라로 돌아온후 고려장수 김방경과 몽고의 흔도(炘都)가 이들을 치러올 때인 1273년 추자도에서 바람을 피해 머물렀는데, 후에 탐라인들의 그 공을 생각하여 이 섬의 이름을 후풍도라고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조선조 인조때 사람 김상헌(1570~1652)이 어사의 명을 띠고 주로 제주지방을 순행하면서 쓴 기행문인 ‘남사록’에는 제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며 바람을 만나 추자도의 당포(堂浦) 즉 대서리포구에서 3일간이나 대기하며 바람을 기다린 기록과 추자도 지명에 대해 자세히 적어놓고 있다.

   

 

▲ 추자도는 어떤 섬

 

 추자도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섬으로 상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금바리를 제외한 모든 어종이 풍부한 지역이며, 일본까지 소문난 바다 낚시터로 많은 낚시인들이 찾는다. 겨울에는 주로 감성돔과 학꽁치, 봄에서 가을까지는 황돔, 흑돔, 농어 등이 잘 잡힌다고 한다. 부속 섬들의 대부분은 동남쪽해안이 절벽을 이루는 반면, 서북쪽은 경사가 완만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도에 속하는데 풍속과 자연은 전라도와 유사하다. 예로부터 생필품과 어구를 마련하거나 잡은 고기를 내다 파는데, 역시 뭍으로 나들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일 생활권이 되어 말씨까지 닮은 것이다. 면소재지인 대서리에는 지방기념물 제11호인 최영 장군 사당이 있으며, 이웃마을 영흥리에는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9호인 박처사각이 있다. 하추자도에는 ‘돈대산(燉臺山, 164m)’이 가운데 자리 잡았고, 올레 산책로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 올라가 섬을 조망하기에 알맞다.

   

 

▲ 섬사람들이 내세우는 ‘추자 10경’

 

1) 우두일출(牛頭日出) - 우두도(속칭, 소머리섬)의 초여름 일출 광경이 소의 머리 위로 해가 뜨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2) 직구낙조(直龜落照) - 상추자의 서북방 최단에 거북 모양을 한 직구도가 있는데 저녁노을이 매우 아름답다.

 

3) 신대어유(神臺魚遊) - 하추자 예초리와 신양리 사이의 신대에는 천혜의 황금어장이 형성되어,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4) 수덕낙안(水德落雁) - 하추자의 남쪽 끝에는 사자 형상의 수덕도가 위풍당당하게 떠 있는데, 각종 물새가 사자머리에 해당하는 섬 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먹이를 쫓아 바다로 쏜살같이 하강하는 광경을 말한다.

 

5) 석두청산(石頭靑山) - 하추자도에 있는 청도라는 섬이 있는데, 마치 사람의 머리 같은 산꼭대기의 암반이 푸른빛을 띤다.

 

6) 장작평사(長作平沙) - 신양 포구의 해변을 가리키는데, 폭 20여m에 길이 300m의 자갈 해변이다.

 

7) 추포어화(秋浦漁火) - 추포도는 제주도에 딸린 유인도 중 가장 작으면서도 멸치 떼가 가장 많이 모이는 섬이다. 추자군도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섬은, 어둠 속의 멸치잡이 불빛과 잘 어우러진다.

 

 

8) 횡간귀범(橫干歸帆) - 횡간도는 제주도의 가장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는 시원스레 펼쳐진 흰 돛을 단 범선들이 돌아오는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단다.

 

9) 곽개창파(곽개蒼波) - 추자도와 제주 본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관탈섬의 또 다른 이름이 ‘곽개’이다. 과거 유배객들이 제주도로 들어 올 때에 이 섬 앞에 이르면 갓을 벗었다는 데에서 섬 이름이 유래되었다. 곽개섬 부근의 푸른 물결은 세상 인연을 지워버릴 듯 무심히 너울거리며 흐른다. 그래서인지 더욱 푸르게 느껴진다.

 

10) 망도수향(望島守鄕) - 추자군도 섬들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는 섬이 망도(속칭 보름섬)이다. 타향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먼 수평선에서 가물거리듯 망도가 시야에 들어오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추자군도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 버스를 타고 돈대산 입구에서 내려

 

 우리는 몇 차례 다녀갔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타고 상추자에서 하추자로 이어지는 추자교를 건너 묵리와 신양리를 거쳐 돈대산 입구에서 내리기로 하고 차에 올랐다. 순환버스는 11시에 하추자항을 출발하여 하추자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온다. 올레길을 걷겠다는 한 분을 두고 지역주민에 36명이 끼어 타서 오랜만에 만원 버스를 타고 가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한 마디 없이 묵묵히 가서 바로 능선 고개 돈대산 옆구리에서 차를 내려 등산로로 들어선다.

 

 들어서자마자 추자 특산 섬오리나무가 아는 체를 한다. 이곳 추자에서는 이상하게도 이 나무가 많이 자생한다. 그런 중에도 예덕나무와 상수리나무, 소나무 들이 섞였다. 보리수나무에 열매가 익어가고 있어 한 알씩 따서 오물거려본다. 이동통신 안테나 옆을 돌아 멀리 보이는 정상의 정자를 바라보며 능선에 오르니 북쪽으로 섬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 지금 추자도는 꽃 세상

 

 옆을 자세히 살피니, 먼저 층꽃나무가 꽃을 피워 우리를 맞는다. 이건 작긴 하지만 분명히 목본식물이다. 그 작은 키에 짙은 보랏빛 꽃이 층층이 피어 있는 모습이 퍽이나 앙증스럽다. 다음에 만난 것은 노란 빛의 이고들빼기인데, 이 꽃은 섬 전체에 고루 퍼져 꽃 세상을 이룬다. 아직 산국이 피기 전이라, 그게 필 때까지는 계속해서 이 섬을 장식할 것이다. 어린 것들도 빽빽이 나 있어 그걸 쳐다보며 고들빼기김치를 생각하고는 입맛을 다신다.

 

 쑥부쟁이가 있는 위치에 따라 피고지기를 반복하고 정상에 이를 무렵 해서 구절초가 피어 온통 하얀 꽃밭을 이루고 있다. 정상 능선에는 미국쑥부쟁이가 상륙하여 자리를 잡고 있다. 기름나물과 해국(海菊)은 바다쪽에 자리하고 있어 나중에 오다가 찍었다, 특히 해국은 바다를 배경을 찍야 한다고 해서 찍으려는데,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버려 꽃은 그늘에 있고 바다는 햇빛이 너무 밝아 찍기가 수월치 않다.

   

 

▲ 베지근한 삼치회와 맑은 국

 

 뒤에 떨어져 사진을 찍고 있던 4인은 담수장 위 올레코스 18-1의 나머지 코스를 걸어 능선을 따라 거의 다리 옆까지 내려 다리를 건넜다. 물때가 맞을 때는 다리 위에서도 고기를 낚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오늘은 낚시꾼 일행이 묵은 다리가 있는 곳에 만들어 놓은 낚시터에서 낚싯대를 드리운다. 곳곳 해안선 너머로 바라보는 섬 풍경은 우리를 다시 나그네로 만들었고, 수차례 왔던 기억으로 하여 한편으론 고향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최영 장군 사당은 밥 먹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바로 제일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 때 예약해 두었더니 벌써 상이 차려져 있다. 사장이자 주방장인 주인아저씨가 삼치회 쟁반을 들고 들어와 회 먹는 방법을 일러준다. 먼저 김에 밥을 한 숟갈 떠놓고, 그 위에 양념장을 찍은 회를 살포시 올려놓은 다음, 구미에 맞게 김치나 마늘을 올려놓고 먹으라는 것이다. 가을 삼치가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입에서 아주 살살 녹는다. 구운 삼치에 맑은 국까지 먹으니, 그렇지 않아도 작아진 위에 막걸리까지 배가 터질 듯하다. 한 상에 6만4천 원짜리 삼치정식인데 너무 푸짐해서 회가 남았다면서 모두들 흐뭇한 표정들이다.

 

 

▲ 추자항을 떠나며

 

 밥을 먹고도 두 시간 가량 남아 나머지는 자유 시간으로 하고, 희망자만 먼저 최영장군 사당에 들른 다음 그 뒤편 능선을 따라 나 있는 올레길로 봉그레산 정상에 있는 정자까지 올랐다가 내려왔다. 능선길이라 가파르지 않아 걷기에 편하다. 오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얻은 참돔을 썰어놓고 다시 부두에서 한 잔을 곁들이고 나니, 세상이 온통 내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다시 표를 사서 목포에 다녀오는 배를 기다렸다. 원래 핑크 돌핀호는 아침 9시30분에 제주항을 출발하여 상추자(10:40) → 진도 벽파항( 11:45) → 목포 도착(12:40) - 목포 출항(14:00) → 진도 벽파항(14:45) → 상추자(16:00도착, 16:25 출발) → 제주항(17:20)을 오가는 배이다.

 

 기다리는 동안에 이제는 추자 명물이 돼버린 굴비를 만드는 조기를 잡아와 그물에서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 걸 보았다. 비싸다시피 작은 조기만 조금 걸려들었고 고도리와 잡어들이 많다. 삼치도 오늘은 많이 잡지 못하여 사가지고 올 것이 없다. 배에서 남은 술잔을 기울이다 일행 중 심히 멀미하는 세 여인을 돌아다니며 다독이다 보니, 어느덧 제주항에 이르렀다. 그래도 별 탈 없이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추자 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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