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승철 시조집 '터무니 있다' 출판기념회가
그의 시비가 있는 머체왓길 들머리에서 있어
거기 다녀왔다는
순동 성님광 성운이 아시의 얘기를 듣고 조금 미안했는데,
오늘 오후에 우편으로
그 시조집을 받았다.
이리저리 읽다가 몇 편을 골라
지난 일요일 한대오름 산행 중
신록이 너무 좋아 찍어둔 사진과 함께 올린다.
♧ 터무니 있다
홀연히
일생일획
긋고 간 별똥별처럼
한라산 머체골에
그런 올레 있었네
예순 해 비바람에도 삭지 않은 터무니 있네
그해 겨울 하늘은
눈발이 아니었네
숨바꼭질 하는 사이
비잉 빙 잠자리비행기
<4. 3땅> 중산간 마을 삐라처럼 피는 찔레
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
할아버지 할머니 꽁꽁 숨은 무덤 몇 채
화덕에 또 둘러앉아
봄꿩으로 우는 저녁
♧ 누이
쇠똥이랴
그 냄새 풀풀 감아올린 새순이랴
목청이 푸른 장끼 게워내는 울음이랴
초파일
그리움 건너
더덕더덕 더덕밭
♧ 까딱 않는 그리움
어느 산간
어느 폐교
종소리
훔쳤는지
쇠잔등 굽은 오름
도라지꽃 한 송이
그리움
까딱 안 해도
쇠울음만 타는
가을
♧ 매봉에 들다
하늘은 말씀으로 세상을 거느리고
도랑물은 구름으로 하늘을 거느리네
봄날이 다하는 길목
누가 날 거느리나
볼 장 다 본 장다리꽃
설렘도 그쳤는데
삼십년 외면해온 그 오름에 이끌렸네
첫 시집 못 바친 봉분
무릎 꿇고 싶었네
사랑도 첫사랑은
한 생애 허기 같은 거
주거니 받거니 잔 돌리는 장끼소리
봄 들판 깽판을 놓듯 푸릇푸릇 갈아엎네
♧ “셔?”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번 묻는 말
“셔?”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 말
“셔?”
♧ 딱지꽃
신제주 어느 변두리 골목과 골목 사이
거미줄 그어놓듯 해장국집 차린 아내
가끔은 중국말 제주말 걸려들고 있었다
누구의 한때인들 끗발 한 번 없었으랴
밤마다 가슴에 쓰던 사직서를 내밀고
철지난 세상에 나와 저 혼자 핀 딱지꽃
이승을 뜰 때에도 이렇게 혼자라면
성당의 저녁미사는 뭐 하러 드리는가
불빛이 불빛에 기대 싸락눈 달래는 밤
♧ 봄꿩
대놓고 대명천지에
고백 한 번 해본다
오름만 한 고백을 오름에서 해본다
갓 쪄낸 쇠머리떡에
콩 박히듯 꿩이 운다
♧ 추렴
이따금
섬잔대 떼 오름 건너는
방어철
세상에서 한 발짝씩
물러앉은 불빛들이
낙향한 애월의 밤을
추렴하고 있었다
새 대가리 말 대가린
바람 쪽을 향한다는데
종호 선생 석희 선생
창집의 형 성운이 시인
비틀랑
시조 종장을
끌고 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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