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부처님 오신 날에

김창집 2015. 5. 25. 08:02

 

오랫동안 우리들의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아온 부처님.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 민족은

부처님을 통해 자비를 배우고

마음을 수양하면서

품격 높은 문화와 고매한 정신세계를 구축해

삶을 한층 안정되게 해온 것이 사실이다.

 

불기 2559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불교계가 봉축법어를 발표했다.

 

먼저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은

“나를 위해 등(燈)을 밝히는 이는 어둠에 갇히고,

남을 위해 등을 밝히는 이는

부처님과 보살님께 등을 올리는 것”이라 했고,

 

한국불교태고종 종정 혜초스님은 올해 석탄일 법어에서

“중생사회를 밝히는 주인공이 되자”고 강조했다.

 

대한불교 천태종 종정 도용스님은

“세상이 고해이기에 부처님의 오심은 더욱 빛난다”며

“탐욕과 성냄으로 얼룩진 사바의 오늘에서

나를 내려놓고 남을 위한 불공과 기도를 해야 한다”고 법어를 내렸다.

 

 

♧ 그릇 만큼 비우고 - 엄혜숙

 

승용차 한 대 가누기 버거워

구불구불 접혔다 펴지는

백운사 가는 길

부처님 오신 날 奉祝봉축 드리려

풀잎들은 일제히 고개 숙이고 있다

바람 속에 드문드문 섞여

가늘게 늘어져 우는 목탁소리 밟으며

一切일체가 唯心造유심조라는 화두 속을 걸어간다

마흔이 넘도록 옷섶의 단추 제대로 채우지 못한

헐거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비움과 버림에 대하여 일어서지 말아야 할

마음은 환한 꽃잎 따라 몸 기대는데

발길은 오히려 늪 속으로 길을 낸다

 

언덕 위 토담집이 길 위를 지날 때

올망졸망 장독대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비는 일정한 간격으로 마음 닿는 곳에 내리고

입 벌린 장독은 그릇만큼만 담아내고 있다

나의 밑동 새는 그릇은 어쩔 수 없이 넋놓고 앉아

고인 것 뱉아내야 하는 저 빈 물동 닮았을까

벼랑 끝에 부러지는 바람 담을 수 있는

속 깊은 그릇 빚어내고 싶다

지는 해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는

부처님 동공 속에 無形무형의

보이지 않는 넉넉한 그릇 보인다

   

 

♧ 木魚 - 정 군 수

 

용머리 틀어 올린 대들보

단청에 감겨서 울지도 못하다가

등위의 붉은 먼지 씻어내려고

부처님 오신 날에나

비어 있는 뱃속을 열어 놓는다

스님의 염불소리

녹음기 하나로 삼경을 지새우지만

공양미 씻어내던 사미승이나

무딘 정으로 가슴 깎던 목공이라도

속을 저어야 아픔이 운다

마른 목청은 울림도 없어 끊기고

수중을 헤매는 혼을 부르지 못하고

공양미 씻어낸 뜨물에서나

개울물 소리로 절 마당을 씻는다  

 

 

♧ 등불하나 내 걸고(법정스님 추모시) - 한상숙

 

잠시 머문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대중들을 위해

꺼지지 않는 등불하나를 내 걸고 가셨습니다.

그 등불로 인해

세상이 아름답게 변하리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 등불로 인해

사람들이 모두 착한 마음으로 변하지도 않습니다.

그 등불로 인해

부자가 가진것을 모두 버리지도 못합니다.

그 등불은 마술이나 요술을 부리지 못하니깐요.

다만 그 등불은 사람들 마음에 영원히 불타오르면서

채워놓는데만 익숙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괴로움에 빠져있는

삶을 조금씩 비워가면서

어둔 부분을 조금은 환하게 밝혀줄 것입니다.

   

 

♧ 내 마음에 연등을 달고 - 목필균

 

여린 바람에도 흔들리는 마음

힘겹게 부려놓는다.

법당으로 들어서는 가지 많은 나무

 

몸에서 나는 절은 때

향을 피워 가리고

백 팔 배로 머리 속을 지운다

 

합장하는 두 손

꿇어앉는 두 무릎

바닥에 닿은 백 여덟 번의 이마들

 

탐욕을 먹으면 탐욕을 잘라내고

분노를 만나면 분노를 비워내고

미련을 행하면 미련을 쓸어내고

미움을 마시면 미움을 몰아내고

사랑을 품으면 사랑을 풀어내고

 

스치는 바람에도 베이는 아린 상처가

무성하게 자란 잡초로 뽑혀지고서야

촛불로 밝혀지는 정좌된 마음

 

마음의 거울 맑게 닦이면

눈부신 오월의 햇살 속으로

처마 끝 풍경마다 방생의 소리를 낳는다

 

 

♧ 사월 초파일, 전봇대 - 윤성택

 

한때 나는 건너왔다가 건너가는

이별의 것들만 가슴에 세웠다

그 떨림, 차들이 지나칠 때마다

땅 깊은 곳으로 뿌리내렸다

내 둥근 여백의 벽보 숫자들

나로 인해 기억되는 일이 있다면

편지함 같은 변압기로

골목마다 환한 사연을 전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푸른 신호가 들 때까지

청년의 한쪽 어깨를 받아주다가

같이 길을 가고 싶어

웅웅 소리내었던 것인데

왜 청년은 고개 숙여 흐느꼈던 것일까

그때 나도 한번쯤은 별빛을 따라

스스로 빛을 내며 걸어가고 싶었다

그 꿈이 어디로 전송되어진 것일까

밑줄 같은 전선줄에 괄호처럼 새들이 앉았을 때

어제는 누군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등을 매다는 것이었다

그 저녁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도,

등불이 되고 연등이 되어

내 안 뜨거운 전류를 타고

온 마을을

걸어갔던 것이었다.

 

 

♧ 부처님, 법당 밖으로 나가십시다 - 조영욱

 

티끌마저 다스릴 수 없는 얇은 가슴팍으로

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늘 나보다 높아 우러러 뵈는 부처님,

햇살 가득한 법당 밖으로 나가십시다

건들거리는 문고리 부여잡고 맴도는

바람 불러 아이들과 동무 삼아 주고

텃밭 갈아 씨붙임 한 뒤

마당에 둘러앉아 다담을 나눕시다

늘 정겹게 눈 내리깐 부처님,

우리 법당 밖으로 나가십시다

당신 가르침은 늘 마음이 있을 뿐인데

쓸 데 없는 문자 세워 문자 다듬느라

마음이란 마음 모두 빼앗긴 채

문은 문을 만들고 벽은 벽을 둘러쳐

말씀은 달팽이가 된 지 오랩니다

늘 말이 없어 더 두려운 부처님,

남에 손에 이끌려 산문에 든

어쩔 수 없는 이들까지도

당신이 굳이 보살피지 않거나

설법 베풀지 않아도 길을 찾을 테니

이제 말 많은 산문 밖으로 내려가십시다

알맞게 익은 곡차 중생들과 나누며

가슴에 산을 쌓은 하소연도 들어주고

서로 옳음만 있고 그름은 없어

아무 때나 틈만 나면 거저먹기로

딴죽걸기 맞불 놓기에 바빠

제 할 일 못한 채

생명을 생명으로 받들지 아니하는

시시비비도 원만히 가려 주시고

시궁창이 된 마음자리에 연꽃 한 송이

피워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신 부처님,

이제 법당 밖으로 어서 나가십시다

 

 

○ 천수경 - 삼보사(三寶寺)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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