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6.25전쟁 65주년에

김창집 2015. 6. 25. 08:41

 

 

어제는 종일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잠시 그쳤다.

 

달력을 바라보니

‘6.25전쟁일’이라 적혀 있다.

 

만 3년의 내 군대생활과

용병으로 갔던 베트남전

모두 다 6.25전쟁의 연장선상이 아니던가.

 

문득 1월에 하노이에서 만났던

‘전쟁의 슬픔’의 작가 바오닌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전쟁에 참여해 승리하고,

그래서 통일을 이룬 자의 아량일까

쉽게 상대를 포용한다.

 

그리고 그의 장편 ‘전쟁의 슬픔’에

이렇게 썼다.

 

  ‘…정의가 승리했고, 인간애가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 들여다 보고 성찰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누그러든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던 그,

그러나 우리 현실은 아직도 ‘도전엔 몇 배의 응징’뿐이다.

 

모든 전쟁에서 산화하신 분들께

삼가 명복을 빌며, 이 찔레꽃을 바친다.  

 

 

♧ 아직도 끝내지 못한 한국전쟁 - 오정방

    -정전협정 60주년, 제21,915일째 날에

 

6. 25 한국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결코 끝난 전쟁이 아니다

3년 전쟁 뒤 휴전60년이 흘렀지만

통일은 현실적으로 멀기만 할 뿐

그 기미가 좀체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이 원하지 않았던 휴전

그 때 조금만 더 북으로 밀고 올라가

보란 듯이 끝장을 냈어야 했다

강대국이 제 이익 따라 그어놓은 38선

동서로 뻗은 군사분계선 장장 600리

걷어 내지 못한 녹슨 철조망 위로

국적 없는 새들만 한가로이 날고 있다

이렇게 길게 갈 줄 누가 짐작했으리

몽매에도 잊지 못할 이산 가족들

생이별의 아픔마저 이제 다 굳어져

이웃사촌보다 더 멀어진 친인척들

가슴에 박힌 대못 여태 뽑히지 않고

이산 동기간들 눈물샘도 말라버렸다

체제가 무엇이고 이념이 무엇이냐

반목과 갈등과 아집이 다 무엇이냐

전장에서 싸우다 목숨 잃은 영웅들

남의 땅에서 희생된 유엔 참전용사들

지금도 전상으로 고통 받는 상이용사들

그들을 대신해 우린 무엇을 할 수 있나

모두 다 내려놓고 남북이 하나 되어

마음대로 내왕하며 자유롭게 살게 될

그 평화 이루어 질 날은 과연 언제일까

두 손 모아 비나니 통일이여 속히 오라!

   

 

♧ 명숙이 - 목필균

 

  어느 새 얼룩진 지천명, 스물두 살에 지아비를 잃은 엄마 따라가서 살다가 전사자 보훈연금 눈독들인 큰어머니 따라 살다가 그렇게 살다가 여고를 졸업하고 또 그렇게 살다가 고엽제 피해자인 남편 만나 두 아이 어미가 되었지

 

작은 키에 겁 많은 눈

미간에 잡힌 굵은 주름선

 

돌아볼 새 없이 일하며

불혹의 끝에 올라서서야

방 세 칸짜리 집 마련하고

접힌 허리 펴려는데

안방에 터진 IMF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남편

축축한 앞치마로 덮어가며

막막히 내일을 내다보는데

온몸에 돋아나는 가려움증

고엽제 상처는 대를 잇더라고

 

 

♧ 구절초 - 전홍준

 

서리 내린 들녘으로

월남에서 전사통지서가 날아왔다

 

볏단을 묶다 혼절한 매곡댁에게

눈시울이 붉은 마을의 감나무들이

일제히 이파리를 쏟아내렸다

 

남편은 한국전쟁에 또 아들까지

 

겁나게 푸른 가을하늘

 

농약을 마신 당숙모의 눈물이

지천에 아롱져 피어있었다.

   

 

♧ 그해 여름(유학산) - 김용수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유학산 9부능선,

폐허가 되어 사라진 토담집처럼 다 허물어간 참호 안에서 살며시 고개 내민 나지막한 패랭이 꽃,

그 아래 부서진 청석 돌 틈에서 귀뚜라미가 운다.

살아서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달빛 타고 하늘로 올라간 어느 젊은 군인의 영혼이 내려앉은

꽃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 것처럼 노을이 채 지지도 않는 어스름한 초저녁부터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

풀벌레조차 숨을 죽이고 증오마져 연기처럼 사라지던

폭풍처럼 총성이 울리던 그 해 처절한 여름밤

죽음의 강을 건너기 전

빗물 같은 청춘의 눈물을 핏빛 골짜기로 흘러 보내며

부모 형제 처자들을 떠올랐을 것이다.

나란히 둘러 앉아 갱죽을 먹던 기억도 떠올랐을 것이다.

“엄마”라고 불러도 보았을 것이다.

수평선 너머로 아스라이 멀어지는 돛단배처럼 움켜진 고향의 추억들이

둥둥둥 빠져나가면

고귀한 생명도 불꽃 지듯이 사라져 갔을 것이다.

해마다 유해 발굴단이 유해를 발굴해 호국원으로 모시지만

아직도 수많은 전몰용사들이 나선 땅 이곳에 안타깝게 묻혀있기에

설움이 밀려오는 달빛 고운 캄캄한 여름밤이 오면

귀뚜라미는 해마다 그렇게 울고 있을 것이다.

 

 

♧ 장맛비 내리는 날이면 - 남경식

 

입영통지 받고 군에 입대하던 날

한여름의 장맛비는 그리도 속절없이 쏟아져

오직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시던 어머니를

하염없이 실신시켰다

 

어렵고 고단하던 일제시대를 거쳐

광복 후 혼란한 세상에

오로지 남편만 의지한 채 살아온 어머니는

한국전쟁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들려오는 마을의 전사자 소식에 가슴 철렁하며

결국엔 시동생의 전사소식까지도 접한다

떠오르는 두려운 생각은 남편의 안위였다

 

인민군의 남하는 아버지의 고향에까지 미치어

어머니는 시댁 식구들과 함께 피난을 떠나야 했고

다시 돌아온 시댁엔 어린 누나들의 죽음이 기다리고

전쟁은 끝났으나 아버지는 부상을 입은 채 돌아오셨다

살기 어려운 시절인지라

할머니의 생각을 따라

아버지가 완쾌되신 후 숟가락 하나만 챙겨 고향을 떠나

아버지 외가가 있는 오산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내가 태어나고 동생들이 태어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렇게 이곳에 정착했다

그리고 자식들의 고향이 되었다

 

이제 그녀의 아들이 장성하여 군에 가는 것이다

남편을 보냈던 것처럼

이제는 자식을 보내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평화시대에도 어머니는

한국전쟁의 두려움이 다시 생각나

소중한 아들이 걱정인 것이다

 

비는 하루종일 내리고

어머니의 슬픔을 뒤로하고

나는 기차에 올라 입대했다

시간은 흐르고

다시 어머니를 뵙게 되었을 땐

뇌경색으로 투병하시는 어머니의 가련한 모습이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시고

십여 년 더 고생하시다가 아버지를 따라

당신들의 유택에서 해후하셨다

 

장맛비 오는 날이면 가슴 저미게

어머니가 생각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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