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꽃귀띔’의 시와 산수국

김창집 2015. 6. 18. 12:21

 

스를 풀고 나서

다시 물리치료를 받는데

진전이 더디다.

 

깁스만 풀어버리면

맘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안 쓰는 사이에 굳어버린 것이다.

 

물리치료실에 가면

여러 가지 재활을 위한 환자들이

모여 신음 소리를 내며 치료를 받고 있다.

 

내 팔의 경우에

5~6주 안 쓴 것이 이 정도 장애라면

우리 머리에, 마음속에 오래 안 썼던 것들의 장애는

안 보여서 그렇지, 너무 굳어 못 쓰게 된 거나 아닌지.

 

정드리문학회 동인지 ‘꽃귀띔’

저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시 몇 편을 골라

요즘 한창 숲을 장식하고 있는

산수국과 같이 올린다.

 

 

♧ 쌀뜨물이 가라앉는 동안 - 강영란

 

쌀뜨물이 가라앉는 동안 나는 어느 먼 산에 어스름이 가라앉는 걸

바라보는데

이윽고 그 산이 어둠에 완전히 잠길 때 생기는

침전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인데

쌀뜨물이 가라앉는 동안 물 위에 뜬 검은 쌀 서너 알갱이가

산 위를 고즈넉이 날아가는 까마귀 날갯짓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목련 꽃잎 같은 쌀뜨물 가만히 바라보다가

목련꽃 한 그루가 저녁 어스름에 서서히 물들어 가는 거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데

그대여 그대는 나를 어떻게 물들이는가 나는 그대를 어떻게 물들이는가

쌀뜨물이 가라앉는 동안 나는 침전물에 대해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인데

그대에게 침전되어 가는 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인데

 

 

♧ 내 사랑 - 강현수

 

고스란히

천년을

눈 비 바람 맞았습니다

 

한라산 주목처럼

그렇게 견뎠습니다

 

농다리,

살은 다 녹아

뼈만 남은 내 사랑

   

 

♧ 갑마장길 3 - 김영순

 

새벽 산마장에 산기가 긴박하다

말들은 저들끼리 온몸으로 빙 둘러서

소소한 들개 울음도 들여놓질 않는다

 

아마 ‘수고했다’ 그 말을 건네는 거다

갓 태어난 망아지 두어 번 뒤뚱대다

기어코 다리를 세워 중심을 잡는다

 

이제 경마장도 네 길일 수 있겠다

가고픈 길이 아니라 불러야만 가는 길

생애 첫 햇살 오거든

눈 감아라

사랑아

   

 

♧ 박달나무 꽃피다 - 문순자

 

박달나무 박달나무 긴 주걱 따라가면

밥 달라 밥 달라는 예닐곱 살 구엄바다

무쇠솥 처얼썩 철썩

휘젓는 어머니의 노

 

제천장 좌판에서 그 주걱 또 만났네

한세월 거슬러온 박달재 고갯마루

어버지 낮술에 묻은 ‘희망가’도 따라왔네

 

오늘은 김장하는 날, 친정집은 잔치마당

젓갈이며 고춧가루 세상사 휘젓고 나면

한겨울 긴 주걱 끝에

덕지덕지 피는 꽃

 

 

♧ 금성호 - 송인영

 

어떤 마음 지녔는지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

 

아득한 먹빛 하늘

별이 되고 싶었던 사람

 

간절한 기도를 마친 뒤

제주바다 끌어안네

 

외삼촌 채낚기 어선

어디에 가 닿았을까

 

자리돔 가시 같은

빳빳한 자존심으로

 

오늘도

파도 관절 주물러

뭇별, 건져 올리는

 

 

♧ 동백 - 송인영

 

저토록 간절한 기도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연초록 입춘의 아침 죽음으로 맞이한다

 

무시로

 

나리는 꽃잎

 

동백, 저

 

붉은

 

예수

 

 

♧ 감나무 이파리에 - 이경숙

 

알알이 박힌 진주

녹색으로 맺히는

줄기마다 꽉 들어찬 감나무 열정의 열매

내 아들 생각의 트리가 가지가지 익는다

 

가을, 이 단어가 차가운 비로 내려

가끔 목이 쉬네

“조금만 놀고 엄마야”

후두둑 별들이 내리네, 장맛비가 내리네.

 

 

♧ 수국 - 임태진

 

장마가 오나보다

 

마중 나온 수국꽃

 

어머니 서말 눈물 아버지 천근 한숨

 

다 품고

 

시집가던 딸

 

손에 핀 부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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