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오늘은 뭐부터 할까 하다가
이사랑 시집 ‘적막한 채’를 꺼내들었다.
읽다 둔 곳을 펼치니
‘심심한 날’이 나온다.
한적한 농촌의 무료한 날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장마는 어디에서 헤매고
태풍은 어디까지 왔는지?
시 몇 수를 옮겨
공룡 같은 고삼(苦蔘) 꽃과 같이 올린다.
♧ 심심한 날
논길에서 쑥부쟁이 흔들다
건들건들 우리 집에 놀러 온
개구쟁이 바람
텃밭에 부추꽃 가만가만 흔들어보고
이슬 맺힌 거미줄도 살살 흔들다가
그래도 심심한지
마을 어귀 늙은 팽나무도 흔들어보고
저수지 버드나무 머리나 빗겨주는
너도 나만큼 심심하냐?
♧ 먹고 사는 일
이른 아침
산밭에 다녀온 어머니 말씀
어젯밤 멧돼지가 와서
고구마 죄다 파먹었다
어머니가 이랑마다 뿌린 땀
서리서리 된서리 맞았다
냅둬라! 배고픈 것들
나눠 줄 게 그거 밖에 더 있냐?
죄다 배고픈 죄
먹고 사는 일이 죄다, 죄다
♧ 어머니의 해학적 발상
어머니를 위하여
삼촌이 가져온 전동유모차
토방에 얌전히 모셔놓고
무슨 자존심인지 뚝심인지
내 나이가 몇인데 하시며
뒷짐 지고 마을회관 출입하더니
연습 삼아 몇 번 타본 뒤로
당신 생각이 바뀌었다
“이거시 내 다리여 발이여
찰로 요거시 효자랑게
느그 시아재 집에 요거시 두 개나 있당게
애미 너도, 한 개 갖다 타고 댕겨라”
“어머니 제가 그걸 어떻게 타요
내 나이가 몇인데”
“나 같은 바보 멍청이도 타는디
너는 기차게 탈 것이다”
♧ 그럭저럭
참아보니 참아지더라
참다 보니 참을 만하더라
견뎌보니 견뎌지더라
견디다 보니 견딜 만하더라
먹어보니 먹어지더라
먹다 보니 먹을 만하더라
살아보니 살아지더라
살다 보니 살 만하더라
♧ 손
악수하고 손뼉을 치고 긁어주고 닦아주고 안아주고 춤을 추고 연주하고 시를 쓰고 죄를 짓고 기도하는
이 도구는,
생의 유효기간 동안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다
♧ 애착
가난한 농가에 입주하던 날
집들이 선물로 돼지 한 마리
들어왔다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에 처박혀
그는 내가 먹다 남긴 우수리와
자투리 시간을 먹었다
늦가을
칼도 대지 않고
털도 밀지 않고
돼지를 잡고 있다
주둥이를 힘껏 비틀었다
피와 살점 같은 시간이
쇳소리를 쿨럭쿨럭 토해낸다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 한 잎
개도 안 물어갈,
다보탑 학, 우리 쌀 이순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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