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제주어 글

다신 보릿고개가 으시카양

김창집 2015. 9. 2. 07:50

 

[고향 이야기 11]

 

                                       다신 보릿고개가 으시카양

 

 어머님!

 그 때엔 무사 모인좁삐 하영 썰어 논 죽이 경 맛 엇어신고예. 아이덜 레 타령염젠 아가문, 마흔 넘도록 튼내멍 숭보던 소리. “삐 논 조축만 쑤문 정짓무뚱에 아정 눈물만 뚝뚝 흘리단 놈이, 아이덜신디 경 답도리여져.”

 

 정말 우리 그 땐 무사 경도 못살아신고예. 백봄은 어떵 경 진지, 보리고고린 필 생각도 아니 디 오꼿 보리이 떨어져 불문, 새끼덜 못 멕이는 것이 이녁 죄거찌 생각뒈염신고라 돌아 앚앙 눈물 숙닥영 이싱 거 보멍 밥이 잘 안 넘어 갑디다.

 

---

*무사 모인좁삐 하영 : 왜 찰지지 않은 좁쌀에 무 많이

*레 타령염젠 아가문 : 반찬 투정한다고 말할 때면

*튼내멍 숭보던 : 기억을 되살리면서 흉보던

*정짓무뚱에 아정 : 부엌문에 매달려

*경 답도리여져 : 그렇게 추궁할 수 있느냐

*이녁 죄거찌 : 자신의 죄처럼

 

 

 이제 왕 생각여 보난, 지나가 분 일이난산디, 미진 추억꺼리가 뒈어부러신게마씀. 머을밧 잣 돌멍 하늘레기 뿔리 파당 물에 메칠 아안청 씨고 초라운 맛 우려뒁 콩죽에 벡이 여 노문 락내는 꼼 나주마는 쫄긋쫄긋니 먹을만 엿수다. 또, 드릇 뿔리 파당 ㄹ망 감제 친 거 먹듯 먹으문 들쿠릉게 요기는 뒈어십주마는 쓰우룽게 맛은 벨로 읏엇수다.

 

 그 때 먹어난 것 중에 경여도 질 맛좋앗단 건 아명여도 모는젱이에 감제 썰어 놓앙 멘든 범벅이라나서양. 덩어리썩 그창 댕기멍 먹단 생각이 남수다. 경 집이선 물읏 캐어당 엿영도 먹넹 주만은 그건 못먹어봐서양. 새밧 이기는 디 강 마는 구엉 먹어봐십주마는.

 

---

*하늘레기 뿔리 파당 앙 : 하늘타리 뿌리 파다가 갈아서

*락내는 꼼 나주마는 : 박냄새는 조금 나지마는

*는젱이에 감제 썰어 놓앙 : 메밀는젱이(메밀껍질과 쌀이 섞인 가루)에 고구마 썰어 놓아 

*물읏 캐어당 엿영도 : 무릇 캐어다가 엿을 고아서도

 

 

 어느 해우깡. 먹을 것이 하도 읏이난 감제 주셍이 사당 밀주시에 섞엉 사까링 놓앙 떡도 여 먹언 살아나지 아니엿수가. 그것도 재수 읏이문 톱밥이영 씨레기영 막 섞어진 거 걸령 체로 처사 무시걸 여 먹어시난, 요지금 ㅌ으민 도새기 사료만도 못 것덜 먹언 산 거 아니우깡.

 

 생각여 보문 비료 읏이 걸름으로만 농짓단 때는 무사 곡석이 경 안뒈여신디. 새밧 이기고 놈의 밧 뱅작여봐도 ㄹ우리 멧 섬이 고작이곡, 돈 뒐 거 읏엉 아이덜 월사금 내젱 짐 정 장에 강 당 보문 저슬장이나 갓수강.

 

---

*감제 주셍이 : 고구마 전분을 빼고 난 찌꺼기

*밀주시 : 밀기울. 밀을 도정(搗精)하고 난 찌꺼기

*뱅작 : ‘병작(竝作)’ 또는 ‘배메기’로 소작인이 지주의 밭을 경작하여 소출을 반으로 나누는 것

 

 

 실커 거둔 건 저실에 먹실일 오죽 합니깡. 훌터 장에 저 날람시문 항에 놀 어이도 읏이 읏어저십주. 콩이라도 꼼 남은 집이선 복작아당 모인좁 놓앙 콩죽 쑤엉 먹엉 냑 냉기곡, 퍼대기이나 동지 꺾어당 콩국 끌령 더박더박 거려 먹으문 질이라 나십주.

 

 경곡 복젱이 장시라도 거리에 오문 콩 두어 뒈 거려 줭 궤기 바꾸아당 껍데긴 벳경 빗룩이나 풀른 바굼지 귀야지에 붙이곡, 궤기 토막은 신 김치 놩 볶앙 밥 먹듯이 먹어서양. 그 복쟁이덜 다 어디 가신고, 이제 셔시문 떼돈 벌컬.

 

 아, 우리 옛날 살아난 집 서녁집이 길룽이 있지양. 무사 일분 강 사는 놈 잇지 아니우까. 국민교 3학년 땔 거우다. 교 갓단 완 보난 하도 먹을 것이 읏이난 삥이 빠먹으레 가지 아니엿수가. 베 고픈 지멍에 샌 거, 안 샌 거 리지 아니영 드러 빠 먹어십주. 뒷날은 또꼬망 막안 오죽 고생엿수가. 집인 아무도 읏인디 이래 화르륵 저래 화르륵 울멍 아뎅겨도 어떵 해볼 수가 어신거라마씀. 수 으시난 이녁냥으로 막댕이 디물란 막 쑤셔봐도 피만 나오멍 벤은 나오지 아니 연 무지게 고생엿수게. 정말 또꼬망이 찢어지게 가난는 말을 실감엿수다.

 

---

*실커 : 가을 곡식들

*냑 냉기곡 : 하루 저녁 넘기고

*퍼대기 : 토종 배추의 하나로 겨울에 결구(結球)되지 않고 납짝한 채로 자람

*빗룩이나 풀른 바굼지 귀야지에 부치곡 : 빗자루나 풀바른 바구니 귀퉁이에 붙이고  

*삥이 빠 먹으레 : 삘기 빼서 먹으러

 

*또꼬망 막안 : 항문이 막혀서

 

 

 일제 땐 공출 걷어가부난 소낭 빈대 가죽 벳견 먹엇젱 연 두린 때 먹어보난 꼼 초라와도 코롬 맛은 이십디다. 모살 밧디 강 셋뿔리 확 아댕경 거죽 훌터뒁 씹으문 코롬은 디 배는 더 고파십주.

 

 검질 맬 일만 읏인 후제사 물찌 보앙 물 잘 싸는 날 갯것이 강 돌 일렁 깅이 잡아당 보리를 놩 깅이범벅 삭 씹어먹든지, 보말이나 매옹이 잡아당 베지근게 먹으컬. 또, 먼 갯것이 강 돌 일르문 구젱기, 오분재기, 구살, 미조쟁이, 재수 존 날은 전북도 떼곡 침 맞이레 가는 물꾸럭이라도 잡앙 발썩 그차 먹으문 오죽 맛좋앗수강. 당 못문 굴멩이라도 심엉 창지 내어뒁 정 와그네, 데우청 앙 먹으문 벨맛입주. 물이 덜 쌀 땐 굼벗이라도 떼어당 물 끌령 확 데우쳥 박박 밀엉 거죽 벳겨뒁 양념 놩 무치문 뽀독뽀독 오죽 맛좀니까.

 

---

*꼼 초라와도 코롬 : 조금 떫어도 달콤한

*셋뿔리 확 아댕경 : 띠의 뿌리 휙 잡아당겨서

*검질 맬 일만 읏인 후제사 : 김 맬 일만 없는 후에야

*갯것이 강 돌 일렁 깅이 잡아당 : 바닷가에 가서 돌을 들쳐 게를 잡아다가

*보말이나 매옹이 : 바닷가의 고둥 종류들

*구젱기, 오분재기, 구살, 미조쟁이 : 뿔소라, 떡조개, 성게, 해삼

*물꾸럭, 굴멩이, 굼벗 : 문어, 군소, 군부

 

 

 이젠 완 그런 말 미나 배염주마는 그젠 너미도 심각여십주. 요지금도 농촌이 가문 큰일 낫젠덜 야단덜인디 다시랑 그런 시절이 돌아오지 날아사 껀디. 자, 보리 갈문 비료깝 제여뒁 일쿰도 못 건지곡, 경여도 돈 나는 거엔 다마, 다마네기, 마농, 당근 ㅌ은 걸 싱그문 시세가 어떵영 꼭 노름는 사름 모냥 들아지곡. 어떤 해엔 시세 읏엉 밧디서 미약이 쌕영 내불곡 멍 빚만 느는 거 아니우깡.

 

---

*다마, 다마네기, 마농 : 양배추, 양파, 마늘('다마'는 일본 말)

*들아지곡 : 걱정해지고

*미약이 : 너무 흔해 문드러지고 품없이 되어버린 모양.  

 

 

 경덴 이제사 미깡낭 싱겅 될 일도 아니곡, 무신 수를 써사주. 당추 들아졍 못살쿠다. 신 사름덜은 항거 지체 못영 야냥게 벗어진 생활 따문에 문제고, 또 징심 굼는 아이덜이 늘어남쩽 염수게. 영당 다시 그런 시절이 아니온뎅 누게가 니까? 개개비 멘주기적 생각 백봄이 보릿고개 넘듯 멍 어떵어떵 뎌사 쿠다.

 

 어머님, 몸조리 잘 염십서. 공일날 가쿠다.

 

                                                                               <월간제주 1990년 4월호>

---

*미깡낭 : 밀감나무('미깡'은 일본말)

*개개비 멘주기적 : 개구리 올챙이적

 

'제주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 이는 날 풍경  (0) 2015.12.30
수눌음  (0) 2015.10.26
곶자왈, 이제 더 읏이대기문 안뒈어예  (0) 2015.08.19
재선충 빙든 소낭  (0) 2013.12.18
‘지슬’ 영화 봅디강  (0) 201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