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수요일 오후.
오름 길라잡이 9기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변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으로 일컬어지는 천관산에 올랐다.
2000년 11월 초, 2009년 11월 말에 이어 세 번째.
남도지방이어서인지 이제야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시계는 그리 맑진 못하나, 기온은 쾌적하여
산행하는 데는 최고의 날씨다.
주차장에서 출발, 장안사는 거치지 않고
바로 봉황봉으로 올라 연대봉과
그 아래로 펼쳐진 억새군락을 지나
환희대에서 구룡봉을 다녀온 뒤,
금강굴을 거쳐 장천재를 통해
다시 올라간 입구로 내려왔다.
전에 두 번 오른 것은 모두 11월이었지만
10월 말이어서 그런지 억새도 볼 만했다.
주중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
우리끼리 산의 주인인 양 다닐 수 있어 좋았다.
조금 힘들어 하는 동료가 있었지만
모두들 거들어서 아무 탈 없이 하산 할 수 있었고,
아무런 제약 없이 사진을 실컷 찍으며
즐거운 추억꺼리를 많이 남긴 산행이었다.
♧ 억새 평원 - 김경숙
거대한 물결 인다는
전설같은 풍문에
밤잠을 설치고 나선 길
굽이굽이 능선 따라
줍는 가을 빛, 눈이 부시다
지축을 흔드는 춤사위에
하늘도 내려앉은
천관산* 억새 평원,
밀려드는 은빛 해일에
표류하는 여정旅情,
높은 파도에 잠긴다
---
* 천관산 : 전남 장흥군 관산읍 농안리에
위치한 천관산은 호남 5대 명산 중의 하나
♧ 가을산 - 윤꽃님
가을 숲을 홀로 거닐다보면
나무가 말을 걸어온다.
사박사박 제 몸 풀어
내 발을 덮어주기도 한다.
칼라에서 흑백으로 모던에서 낭만으로
채널 돌린 듯 소박하게,
한껏 멋부려 입었던 옷을 벗고
속마음을 보여준다.
오래 전 꿈이 있었던 봄햇살의 풋풋함과
여름 하늘의 열정을 밑천 삼아
넉넉한 품으로 날 꼬옥 안아준다.
하루 일과로 꽁꽁 묶였던 스케줄도
잠 못 이루고 술렁였던 신경도
그래서 여기선 모두 짐보따리 풀고
낙엽처럼 느긋한 잠에 빠질 수 있다.
가을산은 겉보기와는 다르다.
들어가 보면 그 진솔한 내면을 만날 수 있다.
메마른 꿈도 버스럭거리는 삶의 피로도
턱,
조였던 태엽을 풀고
역설이나 아이러니도 없이
그저 바람처럼 깔깔 웃게 만드는
가을산은 영락없이 푸근한 중년 아줌마다.
♧ 가을산 - 임동확
다시 그리운 수림 사이로 아쉬운 듯
추억처럼 몇 개의 열매를 남겨놓은
그 가을산에 오르면
제 그림자 하나 맘껏 뻗지 못하는
검게 그을린 산등성이
키 작은 관목숲의 호위를 받으며
몸이 커 버림받은 불새가 앉아 있다
마치 져버린 붉고 노오란 낙엽처럼
그렇게 휩쓸려가는 시간 속에서
날지 못하는 기다림의 깃털을 부풀리며
억센 뿌리의 갈대꽃만 온통 절정인
그곳에 저만의 크기로
아주 오래 숨죽여 울고 있다
그렇다 한 번 날기 위해
아니 두 번 죽지 않기 위해 천년을
저렇듯 자세조차 틀지 않은 채
돌처럼 견딜 수도 있겠구나
그러다가 절박하면 제 안 깊숙이
파고들어 거기 그대로
順命해갈 수도 있겠구나
♧ 가을산 1 - 정군수
먼 곳에 있다가도
내가 창가로 가면
어느새 달려와 몸을 기댄다
호젓함도 투명함도 다 거두어다가
내 눈썹에 얹어 놓는다
낙엽들은 아무렇지 않게 구르다가도
내가 손을 내밀면
저렇게 가을로 잠기던 것을
젊은 날의 꿈도 아무렇지 않게 머물다가
내가 두 어깨를 껴안으면
옛날처럼 그렇게 흐느끼던 것을
먼 길 돌아와 창가에 서서
사념 깊어가는 턱을 괴고
혼자서 늙어가는 가을산을 본다
♧ 가을산조 - 홍문표
그이의 동공처럼 투명한
하늘에
가을의 音階음계가 일렁인다
그이의 심장처럼 뜨거운
대지에
오색빛 꽃무늬 해살진다
중천의 가지마다
그이만큼이나 반가운 얼굴들
하늘까지 나부끼는 기쁨을 보아라
꽃밭 이슬을 머금고
불꽃 열기에 타버린 세월
밤마다 가슴치던 언어가
저리도 고운빛
청아한 목소리
천길 가슴으로 파고드는 곡조가
이 가을 복판을 누빈다
♧ 가을산행 - 권경업
세상살이 마흔이 넘으면
가끔은 까닭 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떠나는 가을 앞에서는 더욱
예전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고추잠자리 한둘씩 사라지고
모두들 제 갈 길로 바삐 가버리면
왠지 모를 설움은
그냥 그러려니 서 있을 수 없게 한다
여름날 흘리던 뜨거운 땀방울들
축복으로 거두어간 빈 들녘의 언저리
억새꽃만 창백하게 계절을 지키고
자꾸 빨리 떠나라며 보채는 바람에
나는 등 떠밀리며 실컷 울고 있었다
'국내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 다랭이마을의 봄 (0) | 2016.03.29 |
---|---|
순천만 국가정원의 가을 (0) | 2015.11.08 |
천관산으로 갑니다 (0) | 2015.10.27 |
청못에서 만난 나도송이풀 (0) | 2015.10.01 |
감은사지 삼층석탑 (0) | 2015.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