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당(彌里塘) 목장을 보다
수두하이 호수에서 나와 1차 집결지에서 만난 일행은 모두 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아무도 고산증세가 없이 오랜만에 산정호수와 맑은 공기 속에서 힐링한 모습이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멀리 있는 비타하이(碧塔海)는 시간이 없어 가지 않고 미리당(彌里塘) 목장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구불구불 돌아올라 삼나무(우리 제주에 있는 삼나무와는 다른 종자) 숲을 지나고 나자 넓은 벌판이 나타난다.
멀리 야크가 풀을 뜯고 아직은 이른지 말들은 안 보인다. 이곳은 지대가 낮은 곳으로 아무래도 우기에는 습지가 되는 모양이다. 거기 게시해 놓은 ‘푸다춰(普達措)의 사계’라는 사진에 보면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넓고 깊은 목장은 아직 푸른빛을 띠기 직전인데, 야크가 없는 곳도 있고 간혹 축사와 관리사들이 보인다. 몇 군데 차를 세우고 목장과 주변 경관을 둘러보게 되어 있다.
우리가 가까이서 본 야크는 소과의 몸집이 크고 꽤 육중하게 보이는 동물이다. 티베트 고원의 해발 4,300~6,100m 지역의 비교적 열악한 환경을 이기고 서식한다. 보통 야크의 털은 검은색이고 짧은데, 옆구리와 꼬리의 털은 길어서 북슬북슬한 술 장식 모양을 하고 있다. 야생 야크가 감소하면서 ‘적색자료목록’에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로 기재되었고, 지금은 주로 북부 티베트에서 발견된다.
이렇게 가축으로 기르는 야크는 사육하는 소와 자유로이 교미하는 흑백 얼룩의 동물로, 고원과 산지에서 짐을 나르거나 사람을 태우고 다닌다. 야생과 가축 야크의 모피는 가죽의 원료로 쓰이며, 인도에서는 꼬리가 파리채로 쓰인다. 가축 야크는 우유와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하며, 옆구리의 긴 털은 끈이나 로프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야크의 마른 똥은 나무가 자라지 않는 티베트 고원지역에서의 유일한 연료이다.(daum백과 참조)
♧ 리장(麗江)으로 돌아오는 길
샹글리아를 꿈꾸며 갔던 푸다춰 국립공원에서도 그걸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계절이 너무 이른 탓으로 생각된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꽃 두견화는 아직 너무 이르고, 산과 목장, 호수 주변에 아직 풀이 많이 돋아나지 않아, 들꽃천지가 되어야 할 환경이 아직도 거무튀튀하게 남은 까닭이리라. 그렇다면 이곳을 제대로 오려면 6~7월에 와야 따뜻하고 아름다운 낙원으로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곳곳에 걸린 사진을 보면, 이곳에서 두견화라고 하는 것은 진달래과의 모든 꽃을 일컫는 말인 것 같다. 오다가 조그만 휴게소에서 찍은 사진은 우리나라엔 없지만 고산지대에 널리 퍼져있는 여러 색의 만병초 같은 꽃이었다. 백두산에서 볼 수 있는 노랑만병초는 키가 작은데 비해 흰색 분홍색 등을 가진 이곳의 것은 나무가 크다. 우리나라 고전을 보면 중국의 영향을 받아 진달래꽃을 한자로 ‘두견화(杜鵑花)’로 표기한 것을 보면 그걸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원래 티베트 지방이었던 이곳에는 곳곳에 탑을 가운데 두고 만국기처럼 오색기가 걸려 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 탑은 초르텐(Chorten)이라 하는데, 부처님이 입적하신 후 사리를 가져간 부족들이 사리를 안치하고 쌓아 놓았던 구조물이 이런 탑으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오색 깃발은 타르초(Tharchog)로 청색은 하늘, 노랑색은 땅, 녹색은 바다, 백색은 구름, 적색은 불을 상징하며, 불성과 우주만물의 상생을 의미한다. 이런 깃발에 불교 경전과 기도문을 가득 적어 높은 곳에 걸어두면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 모든 중생들이 해탈에 이르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을 ‘룽따(Lungta)’라 하는데, ‘바람의 말(風馬)’이란 뜻이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하바쉐산(哈巴雪山) 아래 바이디춘에 가면, 온천수의 탄산칼슘이 침전해 생성된 석회암이 계단식 테라스 형태를 이룬 경이로운 바이수이타이(白水台)가 있다 하나 시간 관계로 가지 못하고, 건조한 고지대이면서 아직은 좀 일러서 붉은 색을 띤 채로 그냥 있는 암갈색의 들판을 바라보며, 리장으로 돌아왔다. 리장에 다 이르러서야 초록색의 들판과 수목들, 그리고 흐르는 물을 볼 수 있었다.
♧ 세계인이 모이는 리장고성
4시간가량 달려 리장고성(麗江古城)에 도착했다. 리장고성은 중국의 윈난성(雲南省), 리장시(麗江市)의 옛 시가지로 1997년 12월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나시족(納西族)에 의해서 건설되었다고 하는데, 나시족은 진사강(金沙江), 야룽강(雅江), 란창강(瀾滄江) 유역에 퍼져 있으며, 신앙은 동파교로 산, 물, 바람, 불 등의 자연현상을 숭배하는 종족이다. 인구 약 24만5천명으로 1961년 리장에 나시족 자치현이 세워졌다.
이곳 리장 고성을 세운 나시족은 8세기경 칭하이성(靑海省) 부근에서 남하해 왔다고 전해지는데, 정착 당시에 마사조로 불리는 작은 나라를 세웠지만, 당나라에 의해 몽사조에 편입되었다. 그로인해 차차 인근의 티베트, 윈난 소수민족의 영향에 의해 이런 독자적인 경관을 이룩해냈다. 이곳의 건축물은 대부분 목조로 불교나 도교의 불상, 벽화가 남아있다. 남송시대의 토착관리인 목씨(木氏)가 이룩한 성벽도 남아 있었지만, 1996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무너졌다. 지진이 일어났지만 다른 곳과 달리 크게 피해를 입지 않아 세계유산으로 등록되면서 빠르게 복구된 곳이다.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너자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나무 아래 수북이 걸린 나무로 만든 패찰들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소원을 적은 명패들이다. 커다란 수양버들이 휘늘어진 물레방아 같은 커다란 수차가 돌아가는 곳에 ‘세계문화유산’이란 간판이 있고, 간단한 안내도를 걸어놓았다. 가이드를 따라 골목길을 들어선다. 그리 넓지 않은 도로 옆으로는 수로가 있어 물이 흐르고, 길은 가로 세로 복잡하게 나 있다.
길가에 서 있는 주 나무는 수양버들이고, 지다 남은 꽃 한두 송이 매단 겹벚나무도 있다. 그 골목은 주로 식당이나 카페여서 ‘막색주파(幕色酒巴)’, ‘노방자(老房子)BAR’, ‘화조-납서주파(火鳥納西酒巴)’ 등 간판이 보이고, 붉은 등이나 조화로 장식했다. 우리는 한참을 걸어들어가 쓰팡제 광장(四方街廣場)에 면한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 ‘앵화옥김(櫻花屋金)’, 한글로 ‘벚꽃마을’이라고 써진 곳으로 들어갔다.
2층 구조로 된 식당 1층 무대에서는 한 사람은 키타, 또한 사람은 작은북을 들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운데로 트여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 모여서 얘기를 듣는 사람, 오가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부산 출신 여인이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그곳의 유일한 한국식당에서 오랜만에 오겹살을 구워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오자 밤이 되어 우리는 시간을 정한 다음 다시 광장으로 모이기로 하고, 길거리 구경에 나섰다. 이곳은 세계의 많은 배낭 여행객들이 모이는 곳으로 한 달이나 두 달 머물면서 차마고도에 다녀오고, 샹글리아나 설산까지 두루 섭렵하는 곳이다. 그런 사람들이 밤이면 밖으로 나와 맛있는 음식을 사먹고, 술을 마시고, 쇼핑하고, 공연을 즐기는 곳이다.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며, 바로 여기가 샹글리아가 아닌가 할 정도였다.
우리는 일정 관계로 고성 안을 돌아보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이 쓴 것을 보면 굉장히 넓고 시설도 볼만하다는 것이다. 밤이어서 그런지 미로처럼 얽혀 있는 그곳을 돌아다녀보니, 엿을 만드는 곳, 고유악기를 만드는 곳, 민속기념품 가게, 특산물을 파는 곳, 수공예품을 만드는 곳 등 가지가지다. 가이드의 말대로 없는 것이 없다. 그 중에는 길거리에서 돼지 바비큐를 파는 곳이 많았는데, 이곳 돼지는 그리 크지도 않고 살찌지도 않아 뼈를 빼버린 통돼지들이 납작납작 엎드려 손님들에게 절을 하는 것 같다.
야크고기 맛을 보기 위해 한 쟁반 시켰더니 송이와 야채를 곁들여 볶았는데, 아주 짰다. 대륙 이 깊숙한 곳에 무슨 소금이 그리 많은지 생각해 보았더니, 차마고도 어느 곳에선가 깊은 못에서 소금물을 퍼다 소금을 만드는 걸 본 적이 있다. 식료품 가게는 식료품 가게대로, 과일가게는 과일가게대로, 간식가게는 간식가게대로, 모든 걸 다 안다고 하던 나도 보도 듣도 못한 것들이 천지비깔이다.
휘황찬란하고 흥청거리는 사람 사이를 비집고 시간에 맞춰 돌아오니, 우리가 처음 들어왔던 물레방아가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그곳 역시 사람의 홍수다. 마당 가운데서는 이곳 나시족 복장을 한 여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리로 치면 강강술래 같은 놀이를 하고 있다. 나중에 관광객들도 끼어 손잡고 같이 돌며 분위기를 돋우고, 하늘에 무선 조종 모형항공기를 날리는 등, 옛것과 현대의 것이 한데 얼려 한바탕 쇼를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는 제주도가 야간 볼거리를 마련하려면 이곳에서 벤치마킹을 했으면 좋지 않을까 하면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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