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혹독한 얼음장 아래
비수의 날 끝으로 품은
시퍼런 씨눈
완전한 자유
그 자유를 쟁취하는
길 없는 산
모든 것이 길인 산으로 간혹
핏빛 참꽃을 밟으며 오는
찬란한 모반謀叛
♧ 춘우春雨
아픔이 저리도 아름답구나
쓰려다 쓰려다 남겨 논
마지막 연서戀書, 얼룩진 여백으로
조개골 산목련이 진다
누군들 강이 되고 싶지 않으리
머무는 듯 흘러
먼 바다 가 닿고 싶지 않으리
여울목 미어짐도 그 무엇도
이제는 꼭꼭 품고 갈
속 깊은 강물일 사람아
다리쉼하는 나루 날은 저물어
꽃 진 자리 쓰리고 쓰린
내게는 아직도 아픔이기에
산목련 지는 날은 겨울보다 더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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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목련 : 함박꽃
♧ 꽃샘바람
평촌리 논두렁 바람
어제는 나물 캐는 처녀 치맛자락 놔두고
오후 내내 신밭골 과수원 탱자울 가 서성이더니
오늘은 가슴 부푼 능금꽃 짐벙지게 피웠습니다
이 저녁 조갯골 골바람 시샘을 해
내일은 도래샘터 살얼음 다시 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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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촌리 :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 아랫동네
♧ 어서 오소
춘곤증 아지랑이 앞세워
무제치기 넘어 봄이온다
어서 오소, 어서 오소
그리운 님 오실 길에
참두릅 개두릅
참취 곰취 어서 오소
모싯대 참나물 홑잎나물도 어서 오소
연둣빛 녹녹한 뻐꾸기 소리
다정한 님 팔베개 이제사 다 잊겠소
날밤 새운 엄동도 한나절 졸음에
양지녘 등 기대고 그 품에 다 잊겠소
♧ 참꽃이 지면
골골에 지는 저 꽃송이
허릅숭이 속 갈피에
마른 꽃잎으로 간직하렵니다
쉬 마음 둘 데 없는 세상길
어찌 저 꽃잎, 다시
꽃물 들 날 있겠습니까만
내 아버지 생전生前에 바라시던
봄이 오는 그리운 나라
그 나라 봄이 오면
핏빛 울음, 핏빛 울음처럼 스러지더라며
그 모습 그대로 전하렵니다
♧ 솔꽃 내음
여보게 이 나른한 봄날
솔꽃 내음 같은
그리움 하나
참으로
참으로 희한한
이 어질머리
난들 어떠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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