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오리나무의 봄 풍경

김창집 2016. 3. 9. 09:56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별도봉에 오른다.

개복숭아가 피었나 돌아보고

벚나무 꽃봉오리를 살펴 보았으나

아직은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이번에 종친회 회장을 마지막으로

봉사 차원에서 맡았던

모든 공직 내려놓고

처음으로 홀가분하게 오른 참이다.

 

바다를 보며 걷는 해안 쪽으로 난 길과

바로 정상으로 오르는 갈래길에서

갑자기 오리나무가 생각나

천천히 가보기로 한다.

 

사방오리인지

물오리인지 구분이 안 가는 나무가

자생으로 서너 그루  꽤 크게 자랐다.

따뜻한 겨울엔 더러 잎을 그대로 달고 나기도 하는데

올해는 한파 때문에 모두 떨어졌다.

 

걷는데 방해가 될까 봐

가지치기를 너무 높게 해버려

사진 찍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비가 올 듯 해가나지 않아

산자고는 입을 앙다물고 버티는데 비해

장딸기와 개구리갓만 활짝 피어 도드라져 보인다.

 

사라봉에 오르면서 보니

수선화는 거의 끝물이고

동백은 떨어진 꽃이 많으나 아직은 볼만하다.

망양정 옆 만개한 붓순나무와 조우하고

거의 다 내려왔는데,

개나리가 하나둘 꽃잎을 폈다.

   

 

♧ 오리나무 꽃 - 김승기

 

보고 또 보아도

청옥 귀고리로 치장한

신라의 선화공주 얼굴이다

 

가지 끝에 치렁치렁 매달린

잎보다 먼저 피는

오리나무 수꽃을 보면서

이 지천명의 나이에

왜 서동요를 생각할까

 

모든 걸 버리고

목숨까지 바쳐가며 얻은 사랑

 

아직 내게도 그런 용기 있는

그리운 사랑이 남아 있는 걸까

 

바람으로 구름으로

청산을 휘저으며 살자 했는데

꽃잎을 스치며 지나며

눈 맞추고 얼굴 비비다 보니

힘줄이라도 불끈 곤두서는 걸까

 

햇살이 윙크하며 끌어낸

봄나들이

오리나무 숲길에서

자꾸만 발길이 멈추어진다

   

 

♧ 우수(雨水) - 박종영

 

잿빛 구름이 눈물의 배를 띄운다.

 

호젓한 산비탈

아득한 고향 하늘,

그토록 융숭한 말씀 들고

오리나무 숲으로 찾아간 촉촉한 바람이

들썩거리는 새움을 간질인다

 

사랑의 신호인가?

긴 겨울을 이기고 돌아와

빛바랜 풍경을 주어 모으며

눅눅한 마음자리 씻기는 빗소리

 

푸석한 마음에

한줄기 강물로 기지개 켜는

오늘은 맑디맑은 우수(雨水)절기,

그대의 우수(憂愁)가 사라지는 날로 기쁨이네.

 

 

♧ 봄 - 차성우

 

당신이 눈물지으시면

별빛처럼 흐를 거여요.

 

당신이 웃음 지으시면

산골짝 깊은 곳

달빛 같을 거여요.

 

오리나무 숲에 부는 바람이

깊은 세월을 지나온

당신 곁에 머물면

눈물 같은 봄이

춤추며 오실 거여요.

 

눈 속을 헤매던 산새들이

눈부신 당신 곁에 노래 부르면

웃음 같은 봄이

두둥실 달빛처럼 오실 거여요.

 

아니 되는 줄,

아니 되는 줄 알면서도

찬란한 눈물과

아름다운 웃음을 기다리어요.

 

봄처럼

당신을 기다리어요.

   

 

♧ 산사람 가슴에는 - 권경업

 

 

산사람 가슴에는

봄날

술고개를 넘는

여린 꽃바람 일기도 하고

수박샘 가로

맑은 하늘 솜털 구름이 떠가듯

고요함도 있어

금정산

오리나무 푸른 숲내음

배어든다

 

설악골 단풍이 진다는 날은

가슴이 시려

메마른 마음의 삭정이

긁어 모아

모닥불을 지피고

밤새워 술마시는 詩情에 젖고

 

잔돌배기가

온통 하얀눈으로 덮힐 때

거친 눈보라 헤쳐

첫눈 밟고 만나자던

산벗의 그리움을 위해

겨울가는 길목은

설레이어라

 

 

---

*술고개- 부산 금정산 부채바위와 무명암 사이의 고개.

*수박샘- 부산 금정산 남문과 쌍계봉 사이의 샘.

*잔돌배기- 지리산 세석평전의 우리말.

   

 

♧ 비 그친 오후 - 김참

 

  비 그치자 숲에서 새들이 나오고 구름도 산너머로 천천히 움직인다 태양은 양철지붕 위에서 반짝거리고 바람은 백양나무의 숲을 흔들며 지나간다 덜컹거리는 완행열차가 지나간 언덕 위를 개구리가 뛰어다니고 포물선을 그리며 나는 새들은 쑥 뜯는 여자가 있는 오리나무 뒤편으로 사라진다

   

 

♧ 봄 밤 - 이기철

 

가난도 지나고 보면 즐거운 친구라고

배춧국 김 오르는 양은 그릇들이 날을 부딪치며 속삭인다

쌀과 채소가 내 안에 타올라 목숨이 되는 것을

나무의 무언(無言)으로는 전할 수 없어 시로 써보는 봄밤

어느 집 눈썹 여린 처녀가 삼십촉 전등 아래

이별이 긴소설을 읽는가보다

 

땅 위에는 내가 아는 이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서까래 아래 제 이름 가꾸듯 제 아이를 다독여 잠재운다

여기에 우리는 한 生을 살러 왔다

 

누가 푸른 밤이면 오리나무 숲에서 비둘기를 울리는지

동정 다는 아낙의 바느질 소리에 비둘기 울음이 기워지는

봄밤

잊혀지지 않은 것들은 모두 슬픈 빛깔을 띠고 있다

 

숟가락으로 되질해온 생이 나이테 없어

이제 제 나이 헤는 것도 형벌인 세월

낫에 잘린 봄풀이 작년의 그루터기 위에

또 푸르게 돋는다

여기에 우리는 잠시 주소를 적어두려 왔다

 

어느 집인들 한 오리 근심 없는 집이 있으랴

군불 때는 연기들은 한 가정의 고통을 태우며 타오르고

근심이 쌓여 추녀가 낮아지는 집들

여기에 우리는 한줌의 삶을 기탁하러 왔다

 

 

 

♬ The Sound of Silence - Emilian Torr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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