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다시 추워졌다 하지만
꽤 높은 동산에 위치한
우리 동네에도 백목련이 피었다.
동백꽃 거의 져가고
서향과 백서향 다 피어버린 동네,
한두 군데도 아니라 곳곳이 이런 꽃으로 가득하다.
내일이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할
안타까운 날들이 올 테지만
봄이 이미 와버렸으니 그렇게 큰 추위는 없을 터.
없는 사람도 기를 펴고 사는 봄은
이미 동네에 가득하다.
♧ 목련 - 정진명
언제 사주었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속옷은 금박처럼 얇아지다가
씨줄과 날줄 사이로 빠져나간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닳은 올 사이 곳곳에다 구멍을 냅니다.
그 옷의 남루에 갇혀 얼굴을 매만지는 경대 앞의 아내를 바라보며
문득 울컥거리는 것은 나의 목울대 쪽입니다.
무수한 세월의 좀 구멍으로 비치는 아내의 속살 빛은 질척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무관심할 적의 내 영혼마저 연꽃송이처럼 받들던 사랑인데,
내가 잊은 동안에도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이 세상을 소리 없이 떠받치던 영혼의 고운 빛깔을 송송송 보여주는
그 무수한 구멍들,
오늘은 목련 나뭇가지 끝으로 일제히 옮겨갔습니다.
♧ 목련 집 부근 - 박후식
모를 일이다, 다시 물어도
대숲 집 깊은 모퉁이에서 돌아설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꽃이 아니다
달빛이다
담벼락을 흐르는 강물이다
어쩌다 빗장을 열면
새벽 달빛처럼 쏟아져 나와
빈 사랑채 앞에 슬픈 이름으로 서는 것인가
그것은 눈물이다
아픔이다
달이 지면,
달이 지고 나면
다시 강물처럼 흐를 아픔이다
♧ 백목련 - 김상현
하나님이 내다 건 등불은 아름답다.
하나님은 이른 봄부터 분주히 다니시며
꽃등을 밝히신다.
큰집마당이나 작은집마당이나
큰길이나 골목길이나 거르지 아니하고
꽃등을 걸어놓으신다.
사람이 꽃등을 보고 그 마음 밝기를 소원하여
가지마다 꽃등보다 많은 등을 내다 걸며
어떤 것은 사랑이라 이름 짓고
어떤 것은 행복이라 부르며 제 마음을 밝힌다.
천지에 꽃등 환히 밝으면 또 다시
이 봄 가면 꽃등 사그라질 염려 없지 않지만
세상을 꽃등으로 밝히시는
하나님도 가끔은 외로워서
밤이면 빈가지에 별들을 매달아놓고
당신만의 소원을 비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내다 건 등불은 아름답다.
♧ 목련꽃 피는 계절 - 윤용기
잃어버린 시간과 흔적을 찾기 어려운
떨어진 꽃잎은
한 잎 한 잎
해를 거듭할수록 내 가슴에
차곡차곡 추억의 연륜이 옅어진다
아득한 그리움으로 불러보는 이름이여!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떠난 그대여!
잊혀져가는 기억이 안쓰러워
애태우며 피워 올린 하얀 백목련이여!
그리움의 편린이
댕글댕글
꽃잎에 매달려
이른 봄날 밤에 홀로 눈물 흘린다.
♧ 목련 꽃 너머 달이 피는 밤 - 이남일
목련 꽃 너머 달이 피는 밤
도시의 섬은 외롭다.
한 가닥 가래떡보다
밤새 뽑기 어려운 시 한 줄은
아무도 듣지 않는 사월의 노래
산 벚꽃 터지는 소리에
달빛은 꽃잎에 속절없이 눕는다.
그렇다고 꿈마저 외로우랴.
못 견디게 목이 마를 때
발길에 자유로운 바람 따라 떠난다.
가는 곳 묻지 않고
길 없는 길 따라 간다.
♧ 목련화 - 조철형
바람을 안고 살던 거친 날
전신마다 시리운 네 설움은
그리운 남녘의 바람을 기다리며
많이도 아팠구나
바람의 심장에서
혈관 구석구석 요동치던 뜨거운 너의 피가
하늘로 치솟는 날
화려하게 아주 화려하게 너는 춤출 때가 되었다
봄
춤추는 하얀 날들은
오롯이 네가 죽도록 그립던 세상이다
꽃 피면 가여운 날 다가오더라도
가녀린 너의 목이 떨어져도 울지 말고 가야 한다
가야 할 때를 아는 뜨거운 너의 피가
거리를 하얗게 적시온 날
바람의 가슴에서 용틀임하던 그리운 너의 사랑도
뜨겁게 뜨겁게 하늘로 치솟아 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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