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이 지난 가운데
제주에는 벚꽃이 4일 먼저 피어버려
4월1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왕벚꽃축제에
꽃이 다 떨어져 버릴까 봐담당자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는 실정.
그런데 달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월요일인 21일엔 암예방의 날,
다음날은 물의 날,
이어 세계 기상의 날,
결핵 예방의 날이 이어진다.
다른 때 같으면
백목련이 먼저 피고
한 참 지난 다음 자목련이 피는데
이곳 우리 동네 소공원엔 나란히 피었다.
이것도 지구온난화 때문인가?
♧ 자목련 - 도종환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고통스러웠다
마음이 떠나버린 육신을 끌어안고
뒤척이던 밤이면
머리맡에서 툭툭 꽃잎이
지는 소리가 들렸다
백목련 지고 난 뒤
자목련 피는 뜰에서
다시 자목련 지는 날을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꽃과 나무가
서서히 결별하는 시간을 지켜보며
나무 옆에 서 있는 일은 힘겨웠다
스스로 참혹해지는
자신을 지켜보는 일은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오래 고통스러웠다
♧ 자목련의 첫사랑 - 현상길
울타리 바깥에서
기웃거리는 눈짓에
두 볼 벌써 달아올라
떨리는 손길 닿기도 전
붉은 입술 오므리고
혀끝을 적시다가
훈풍의 속삭임만 스쳐도
목이 타는
여린 순정의 꿈
봄밤의 초례 부끄러워
인연의 비 소리없이
흠뻑 젖은 몸 보듬고 가면
투명한 눈물 틈으로
무수히 터지는
연록의 불이여
♧ 자목련 - 목필균
겨우내
소리 없이 올린 기도
기다림이 여물어
하늘 끝에 섰다
봄 속에 봄
가지 끝마다 서 있는
붉은 입술들
바라보는 눈이
파닥거린다
♧ 자목련 피는 밤 - 김승동
그 날 흰나비 꽃을 떠나듯
소리 없이 당신 떠나가신 날
바람도 참 야속하였습니다
미움이 커지면 잊혀질까
흐린 날 비가 내려도
달빛에 안개꽃이 져도
당신 탓만 하였습니다
빈 들판에 바람이 가슴을 드러내거나
별이 지나다니던 풀 섶에
무서리가 내리기라도 하면
행여 당신 생각날까
고개 돌리곤 하였습니다
속절없이 흰 눈만 펑펑 쏟아지는 밤엔
안으로 안으로 문 굳게 닫아걸고
다시 보지 않을 듯 그래 그래 하며
참 다짐도 많이 하였습니다만
오늘 밤 나도 모르게
떨리는 속고름 풀면서
왜 자주색 저고리 곱게 갈아입고 있는지
늦은 봄 밤, 자꾸 입술이 젖습니다
♧ 자목련 - 박정순
겨우내 기다림을 가져왔던
몸짓이었다
뜰 앞에서
자주빛 꽃 잎 붉게 타는
자목련
긴 겨울
강철같은 추위로 꽁꽁 묶인
몸을 풀고
온 가슴 흥근히 문질러
그리하여 그 상처 배어나는 여린 얼굴로
잎사귀 돋아
꽃 피는 것이 아닌
그 고통 온 몸으로 나타내고야 마는 것을 모른척 하랴
끝끝내 온가슴 문대질 때까지
버티는 것을
꽃 피고 잎사귀 여는 자목련의 상흔
이 봄은 더욱 붉어진다
♧ 자목련 - 강현옥
아른 시대의 선구자로써
너무 온순하고 수줍다
그러나 빙벽의 뼈들을
부러뜨리는 너의 힘을
부드러운 네 입술에서 읽는다
마른 가지 사이로 떠오르며
펄럭이는 붉은 돛이
보이지 않는 꽃들의 무게를 싣고
지평선 중심에 서 있다
한때는 내 고향
장독대를 바라보며 계절을
각인시키던 시절
나는 무한의 꿈을 꾸며
살과 뼈를 쑥쑥 키워 올렸지
오늘 아침 그 분신들이
수정처럼 매달려 내 뜰에
수를 놓으며 사위의
동토를 서서히 녹이고 있다
♧ 자목련 - 제산 김대식
나목으로 떨던 모진 세월에
설움으로 맺힌 몽우리마다
혹한의 추위에 견뎌온 시련
멍이 들어 얼룩진 보랏빛 망울
하얗게 지우고픈 맺힌 설움도
따뜻하게 다가오는 봄의 미풍에
슬며시 눈처럼 녹아내리는
아픔의 시련도 아름다운 추억
지울 수 없는 상흔도 그리움 되어
꽃으로라도 피워야 할 흔적이기에
바람조차 숙연한 따뜻한 봄날
가지마다 핏빛으로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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