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완두콩 하얀 꿈

김창집 2016. 3. 25. 00:40

 

요즘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공터에다 텃밭을 조성해 놓은 곳이 많다.

 

오종종하게 심어놓은 배추며 무, 마늘, 시금치로부터 각종 채소들,

아니면 잡초로 자라 핀 꽃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에 손쉽게 심어놓은 이 하얀 완두콩 꽃은

얼핏 보면 나비가 앉아 있는 것 같다.

 

완두콩은 전엔 주로 보랏빛이었는데

요즘 들어 하얀꽃 일색이다.

이런 종자도 유행을 타나?

   

 

♧ 완두꽃 하얀 꿈 - 강경우

 

누각의 지붕 위로 눈 시린 달빛은 파아라니 깊어

덩굴 손 하늘에 두고

보랏빛 야윈 꿈을 꾸었네

 

세모시 이는 바람 포올폴 나비가 춤을

잊었는가 싶은 애릿한 정이

더듬이 손

꼼지락 꼼지락

 

선명도 해라, 여명처럼 뽀얀 달빛이

서까래 휘느린 허리를 따라 흐르면서 부터는 막새 끝

주춤 멈춰선 그리움

아! 가까워서 머언 사람아

 

그 여린 얼굴에 오똑 솟은 콧날

풍경 사슬을 비껴 감아도는 빛이 결따라 스르르르

언 듯 스치는 바람

바람인가 싶더니

 

땡그랑! 땡그랑!

화아안

아!

보랏빛 파르란 꿈, 새벽이 오는….

 

 

♧ 꼬투리 속의 두 개의 완두콩 - 최남균

 

 

음 눈 떴을 때

태양은 붉거나 강렬하지 않았지

온통 연둣빛 꼬투리였어

 

생의 봄날이 기지개 켤 때

강아지풀 쓰다듬고 온 바람이

덩굴손 이끌어 개울을 건넜지

 

처음 사진관에 갔을 때

찰칵하고 비치던 그림자는 퇴색하고

터지던 순간만 기억해

 

언제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흑백사진 이면처럼 하얗던

 

징검다리 건너던 시절

사진첩 나란히 박혀있는 완두콩

물장구치던 널 못 잊어

   

 

♧ 느그 아부지 - 김형출

 

느그 아부지, 문디 사투리이다

달콤 쌉싸래한 첫맛이나 톡 쏘는 뒷맛은

무뚝뚝한 막걸리 맛, 텁텁한 호랭이었다

고래고래 내지르는 고함은 뭐할 끼고

장숫골長水谷*이 고마 오돌오돌 떨었지

막걸리에 취하면 오냐오냐 흥얼흥얼

만사가 다 좋다!

아부지에게 진 빚 갚을 길이 없다

원금 빼고도 이자가 불어나 그것처럼 세월만 퍼마셨지

이럴 줄 알았더라면

관 속에 문방구 백지수표라도 입금할걸 그랬어,

뽀얀 눈이 비틀비틀 내리는 이상한 춘삼월이면

노처녀의 히스테리처럼

느그 아부지 완두콩 같은 젖꼭지가 그리운 밤이다

지금, 느그 아부지, 폐주廢酒됐다

막걸리 한 사발에 뿌린 기억처럼,

 

---

*지명: 安陰(현 안의면)3동 중 한 곳, 일명 용추계곡(尋眞洞계곡)

   

 

♧ 미련퉁이 - 박천서

 

아침 밥 차려 주며

아내가 하는 소리입니다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빈 위장에 밥알 밀어 넣습니다

 

조기가 초점없는 눈으로

올려다 봅니다

 

배를 가르고 흰 살

완두콩 숨은 쌀밥과 함께

입안에 넣으니 바다 냄새가

느껴집니다

 

미련퉁이 어부는 그물을 손질하며

조각배에 몸을 던져 봅니다

 

저녁이면 등대불 불빛에

찾아와야 하는 쓸쓸한 둥지

오늘은 먼 바다로 떠나고 싶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길 되더라도...

한컵 물 벌컥벌컥 마시며

서둘러 출항 합니다

 

울컥 바다가 그리운 아침입니다.

 

 

♧ 폐교 - 전홍준

 

 

이제 약도 소용없는 치매 걸린 교사에서

삼십여 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린다

 

볼을 차다 날아간 내 고무신에 뺨을 맞고도

선생님에게 고자질하지 않았던 이순신장군이

화단에서 손을 흔든다

 

숨어서 완두콩을 따먹던 운동장 옆 논에는

노란염색을 한 보리가 여태 자라고

 

타작마당 같이 반질반질했던 운동장에는

민들레, 엉겅퀴, 망초들의 봉두난발!

 

인생은 화려한 한 컷의 장면을 기다리다

끝없이 필름을 소진하다 마는 것은 아닐까

 

장엄하게 이미자를 열창하는 동창생 등 뒤로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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