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공터에다 텃밭을 조성해 놓은 곳이 많다.
오종종하게 심어놓은 배추며 무, 마늘, 시금치로부터 각종 채소들,
아니면 잡초로 자라 핀 꽃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에 손쉽게 심어놓은 이 하얀 완두콩 꽃은
얼핏 보면 나비가 앉아 있는 것 같다.
완두콩은 전엔 주로 보랏빛이었는데
요즘 들어 하얀꽃 일색이다.
이런 종자도 유행을 타나?
♧ 완두꽃 하얀 꿈 - 강경우
누각의 지붕 위로 눈 시린 달빛은 파아라니 깊어
덩굴 손 하늘에 두고
보랏빛 야윈 꿈을 꾸었네
세모시 이는 바람 포올폴 나비가 춤을
잊었는가 싶은 애릿한 정이
더듬이 손
꼼지락 꼼지락
선명도 해라, 여명처럼 뽀얀 달빛이
서까래 휘느린 허리를 따라 흐르면서 부터는 막새 끝
주춤 멈춰선 그리움
아! 가까워서 머언 사람아
그 여린 얼굴에 오똑 솟은 콧날
풍경 사슬을 비껴 감아도는 빛이 결따라 스르르르
언 듯 스치는 바람
바람인가 싶더니
땡그랑! 땡그랑!
화아안
아!
보랏빛 파르란 꿈, 새벽이 오는….
♧ 꼬투리 속의 두 개의 완두콩 - 최남균
처음 눈 떴을 때
태양은 붉거나 강렬하지 않았지
온통 연둣빛 꼬투리였어
생의 봄날이 기지개 켤 때
강아지풀 쓰다듬고 온 바람이
덩굴손 이끌어 개울을 건넜지
처음 사진관에 갔을 때
찰칵하고 비치던 그림자는 퇴색하고
터지던 순간만 기억해
언제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흑백사진 이면처럼 하얗던
징검다리 건너던 시절
사진첩 나란히 박혀있는 완두콩
물장구치던 널 못 잊어
♧ 느그 아부지 - 김형출
느그 아부지, 문디 사투리이다
달콤 쌉싸래한 첫맛이나 톡 쏘는 뒷맛은
무뚝뚝한 막걸리 맛, 텁텁한 호랭이었다
고래고래 내지르는 고함은 뭐할 끼고
장숫골長水谷*이 고마 오돌오돌 떨었지
막걸리에 취하면 오냐오냐 흥얼흥얼
만사가 다 좋다!
아부지에게 진 빚 갚을 길이 없다
원금 빼고도 이자가 불어나 그것처럼 세월만 퍼마셨지
이럴 줄 알았더라면
관 속에 문방구 백지수표라도 입금할걸 그랬어,
뽀얀 눈이 비틀비틀 내리는 이상한 춘삼월이면
노처녀의 히스테리처럼
느그 아부지 완두콩 같은 젖꼭지가 그리운 밤이다
지금, 느그 아부지, 폐주廢酒됐다
막걸리 한 사발에 뿌린 기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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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安陰(현 안의면)3동 중 한 곳, 일명 용추계곡(尋眞洞계곡)
♧ 미련퉁이 - 박천서
아침 밥 차려 주며
아내가 하는 소리입니다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빈 위장에 밥알 밀어 넣습니다
조기가 초점없는 눈으로
올려다 봅니다
배를 가르고 흰 살
완두콩 숨은 쌀밥과 함께
입안에 넣으니 바다 냄새가
느껴집니다
미련퉁이 어부는 그물을 손질하며
조각배에 몸을 던져 봅니다
저녁이면 등대불 불빛에
찾아와야 하는 쓸쓸한 둥지
오늘은 먼 바다로 떠나고 싶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길 되더라도...
한컵 물 벌컥벌컥 마시며
서둘러 출항 합니다
울컥 바다가 그리운 아침입니다.
♧ 폐교 - 전홍준
이제 약도 소용없는 치매 걸린 교사에서
삼십여 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린다
볼을 차다 날아간 내 고무신에 뺨을 맞고도
선생님에게 고자질하지 않았던 이순신장군이
화단에서 손을 흔든다
숨어서 완두콩을 따먹던 운동장 옆 논에는
노란염색을 한 보리가 여태 자라고
타작마당 같이 반질반질했던 운동장에는
민들레, 엉겅퀴, 망초들의 봉두난발!
인생은 화려한 한 컷의 장면을 기다리다
끝없이 필름을 소진하다 마는 것은 아닐까
장엄하게 이미자를 열창하는 동창생 등 뒤로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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