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2016 제23주년 4‧3문화예술축전

김창집 2016. 4. 2. 11:37

 

‘한라산 오름자락 엉장에도 꽃은 핀다’

2016년 스물세번째 4‧3문화예술축전 표제입니다.

 

제주민예총이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4.3사건 추념시화전이 제주작가회의 주관으로

4월1일 4‧3평화공원에 전시를 시작하여

6월30일까지 시간의 벽에 전시된다.

 

4‧3미술제는 탐라미술인협회 주관으로

‘새도림-세계의 공감’이란 주제를 갖고

제주도립미술관에서

4월2일1부터 24일까지 전시된다.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노형해원상생굿’은

4.9(토) 10:00~15:00 사이에

노형동 주민센터에서 열린다.

 

4‧3거리예술제는

4.2(토)~4.3(일) 이틀간 14:00~19:00 사이에

제주시청앞 광장에서 열리는데

안치환과 함께하는 4‧3평화음악제

‘잠들지 않는 남도’는 4.2(토) 17:00

역사맞이 거리굿

‘애기동백꽃의 노래’는 4.3(일) 17:00에 열린다.

  

 

♧ 이제는 함께 해야지요 - 김수열

 

무자년 겨울이었지요

아무 죄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를 앗아간

칼바람에 질려 수평선으로 날아간 바람까마귀처럼

아버지는 아버지의 큰아들, 형님의 손을 잡고

한라산도 모르게 밤바다로 나섰지요

해산 날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살아 있으면, 살아만 있으면 만날 거라며

어미 뱃속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발길질만 하는 둘째 부탁한다며

밀항선에 몸 실어 현해탄 건넜지요

 

그 해 겨울

햇살 바른 동짓달 그믐날

아버지도 없이 형님도 없이

이웃집 삼신할머니 손 빌려

아버지의 둘째 아들, 형님의 동생은 세상 밖으로 나왔고

미역국 한 그릇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어머니는

지아비의 행방을 대라는 토벌대의 손아귀에

머리채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간 후

지금껏 감감무소식입니다

무슨 연유인지 형님도 아버지도 소식 한 장 없습니다

 

형님,

다시 무자년입니다

4. 3에 태어나 내 나이 이제 육십

죽지 못해 살아온 세월입니다

간 날 간 시 모르는 어머니 위해

난 날 난 시에 향불 사릅니다

형님의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내 아버지는

어디 계신지요

형님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 계신지요

 

돌아오는 어머니 기일 날

형님, 한라산으로 한 번 오셔야지요

그래요, 기일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봄이면 유채꽃이 겨울이면 동백꽃이 형님을 맞겠지요

겨울이면 붉은 동백이 형님을 맞이하겠지요

어머니의 품 같은 한라산이 형님을 안아주겠지요

그러니, 꼭 한번 오셔야지요

안 그래요, 형님?…

   

 

♧ 이제랑 오십서 - 강덕환

 

‘이제나 오카 저제나 오카’

먼 올레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여기며

버선발로 뛰쳐나가던 세월이

쉰 해를 훌쩍 넘겼는데

‘아방 오민 곹이 먹어사주’

밥을 먹어도

몫을 따로 챙겨두고

수제빌 끓여도

국물만 들이키며 보낸 세월이

백발로 늙어갑니다

 

바람은 천 년을

불어도 늙지 않고

구름은 만 년을 흘러도 흩어졌다 모이는데

식구들 둘러앉아 먹던 밥숟가락

채 놓기도 전에 끌려간 부모형제들은

호적도 지우지 못했습니다

 

보도 듣도 못한 형무소에서

들이쳐 분 바당에서

한라산 어느 골짜기에서

총 맞고 매 맞아 흙구덩이에 처박히고

복 먹어 고기밥이 되고

얼고 배고파 까마귀밥이 되어

간 날 간 시 몰라

난 날 난 시로

제상 받아 앉은 칭원한 영혼

이제랑 오십서

발걸음 쿵쿵

헛기침도 서너 번 외울르고

부는 바람, 흐르는 구름 잡아타고

여기 안자리로 앉으십서

 

정성의 제단에 해원의 향불 피우오니

상생의 촛농으로 흘러 내리십서

   

 

♧ 까마귀가 전하는 말 - 김경훈

 

1

그해 겨울엔 저리

주둔군처럼 눈보라 휘날렸네

 

낙엽처럼 아픈 사연들 무수히 지고

속절없이 억새는 제몸 뒤척였네

 

쫓기듯 암담한 세상

아득한 절망의 끝자락

 

어디로든 길이 막혀

앞일을 가늠할 수 없었네

 

그렇게 그해 겨울엔

몸 녹일 온기 하나 없었네

 

2

 

온통 언 땅 속에서도

생명의 봄은 있었네

 

억새도 갈옷 벗어

연두빛 봄맞이 하고

 

이름 없는 무덤들

고운 잔디옷 저리 푸르네

 

맺힌 원정 앙금 풀어

봄바람 속 가벼이 흐르니

 

솟아오른 마음이 영을 달래듯

그렇게 무리 지어 목놓아 우네

   

 

♧ 바람의 집 -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섬, 4월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의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햇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다만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섬, 4월 바람은 당신의 뼈 속으로 스미는 게 아니라

당신의 뼈 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로부터 시작되는

당신이 바람의 집이었던 것

 

 

♧ 벚꽃이 피면 - 김영란

 

 이른 봄

 쇠창살로

 햇살이 숨어든다

 

 어느 날 빨갱이 기집이라고 느닷없이 잡혀갔을 때 내 등엔 세 살짜리 딸이 업혀 있었고, 새 생명 하나 움트고 있었지. 이유도 물을 새 없이 몽둥이찜질 당했지. 비바람치던 어느 겨울 밤 난생 처음 배를 타 봤어. 어디로 가는 건지 왜 나를 끌고 가는지,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어. 죽음보다 더한 공포, 물을 수가 없었어. 동물적 본능이었을까 시퍼렇게 참던 아이. 맞은 다리 찢기어 썩어들고 진물 나고 흰 뼈가 다 드러나도록 신음 한 번 안낸 거야. 어미라는 작자가 제 세끼 아픈 것도 모른 거야. 마지막 의식인 듯 어미젖 부여잡고 싸늘한 입맞춤으로 작별인사 하고 갔어. 전주형무소 공동묘지, 거기가 어디였을까? 묻어두고 안동으로 이감되는 날, 벚꽃 핀 걸 보았어.

 

 딸아이

 옹알이처럼

 내려앉고

 잊었어

 

 

♧ 4월의 노래 - 김순선

 

숨죽이다 하얗게 질려버린

산벚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아직 이른 봄날

바람이 검붉은 허리를 내려칠 때마다

연분홍 비늘꽃을 무량무량 떨군다

 

하늘도 적막 속에 조각보를 잇는 선흘리 곶자왈

코흘리개 아이들 병정놀이인 듯

토벌대 총성 앞에 무참히 고꾸라진

목시물굴 속 영혼들

은신처라 숨어든 어둠 속 그늘 집이

불꽃을 잠재운 합묘로 떠올랐다

 

내 어머니 가슴에 용암으로 굳어버린

덩어리 덩어리

바람도 쉿! 큰 소리 내지르지 못하던 절망을 딛고

말더듬이 반백년을 훌쩍 넘어

암갈색의 산벚나무 저리 키를 높였는가.

 

소름은 저리 돋아 살비듬을 떨구는가

해원으로 떨어지는 연분홍 비늘 하나 내 몸에 꽂혀

쥐도 새도 모르게 들려주던 어머니 사설 속

징용으로 끌려간 외삼촌의 서슬 푸른 눈을 만난다.

꽃 진 자리 연두빛 잎으로 돋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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