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기회만 닿으면 천방지축 쫓아다니기 시작한지 10년여. 이번에 오름 3기모임인 ‘사모회’에서 황매산과 비슬산에 간다기에 한 열흘간 북동 유럽에 다녀와 주위에서 체력 걱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따라나섰다.
♧ 비슬산 유가사(瑜伽寺)
산 입구에 유명한 절 유가사(瑜伽寺)가 있어 그곳을 거쳐 가게 되어 있다. 이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로, 827년(흥덕왕2)에 도성(道成)이 창건하였고, 889년(진성여왕3) 탄잠(坦岑)이 중창한 아주 오래된 절이다.
한때 3천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 하나, 임진왜란의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중창하였고, 근래 들어 1976년에 대웅전과 용화전을 중창, 1979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요즘 사세가 번성한 절이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탑을 쌓고 돌에 시를 새겨 세웠다. 한용운의 ‘임의 침묵’과 김소월의 ‘진달래꽃’ 같은 유명한 시로부터 선사(禪師)들의 시까지 많이도 세웠다.
♧ 달성 비슬산 암괴류(達城琵瑟山岩塊流)
들어가는 곳과 여기저기에서 바위가 흘러내린 것들이 보인다. 이른 바 암괴류(岩塊流)라는 것이다. 가끔 큰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산비탈에 돌이 흘러내리듯 모여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그런 유(類)다. ‘암괴류’는 이렇게 암석 덩어리들이 집단적으로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말하는데, 이곳 달성 비슬산 암괴류는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의 거석들로 이루어졌으며, 특이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어 2003년에 천연기념물 제435호로 지정되었다 한다.
이 비슬산 암괴류는 지난 최종빙기 동안 한반도의 주빙하 기후를 입증할 수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동일한 사면경사를 나타내는 산지에서 발달하는 암괴류 중 세계에서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원형도 잘 보존되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5월1일 일요일 맑음
전날 7시간 황매산 등반을 끝내고 얻은 기분 좋은 피곤함이 숙면을 시킨 걸까? 우리 방 식구 세 사람은 12시에 잠에 곯아 떨어진 뒤, 출발시각인 7시에 밖에서 문을 두드려서야 잠에서 깨어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제주에서 뭍 나들이란 항상 배나 비행기 시간에 얽매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시작하지 않으면 안 돼서 이렇듯 재촉하는 것이다.
대구에서 선지 듬뿍 넣은 청진동해장국과 불로생막걸리로 거뜬히 해장을 하고 나서 바로 달성으로 달렸다. 산이 가까워지면서 ‘비슬산 참꽃문화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어 분위기가 살아난다. ‘참꽃축제’면 축제지 거기다가 문화제를 덧붙인 것이 수상해 알아본 즉슨 산신제를 비롯한 축하공연과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가 곁들여져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올해는 비가 많아 참꽃(진달래)이 먼저 피어 이미 졌다하여 조금은 머쓱하였으나, 다른 참꽃(철쭉)을 보면 되겠거니 하고, 차에서 내려 산으로 향한다.
♧ 5월의 신록과 들꽃들
일요일이고 참꽃문화제가 열려서 그런지 등산객들이 유난히 많아, 가는 곳마다 사람과 마주친다. 하지만 5월의 산은 풍성한 초록으로 우리를 감싸주었다. 잎이 넓은 떡갈나무, 신갈나무를 비롯해 단풍나무와 고로쇠나무, 때죽나무, 서어나무 등 신록의 잎사귀에서 퍼지는 맑은 공기는 할딱고개 못지않은 산비탈을 오르는 우리에게 폐속 깊이 들어와 위무해준다.
들꽃들도 풍성하다. 초입에 보이는 애기똥풀을 비롯해 염주괴불주머니, 미나리냉이, 각종제비꽃, 큰으아리 등과 산으로 접어들면서 개별꽃, 산괴불주머니, 애기나리, 각시붓꽃 등이 우리를 반기고, 눈을 들면 병꽃과 철쭉, 매화말발도리 등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 산사(山寺)의 여인 9 - 이의웅
--산사 돌아 나온 바람
눈 덮인 계곡의 그림자는
산사 돌아 나온 바람이었나 봅니다
조팝나무 가지에 하얗게 걸려 아롱거리던
모습은 아마 바람이었나 봅니다
동동주 한잔에 인생을 읊으며
젖어 빗속 어깨높이 나란히 거닐자던
원시의 냄새 폴폴 나던 그 님은
아마 한줄기 바람이었나 봅니다
눈 내린 산 속 짚신신고 헤매다가
물푸레나무 초롱초롱 은빛 눈꽃이 되어
비슬산 산마루 노을꽃으로 살아진
한송이 수련화는 바람이었나 봅니다
다신 만날 수도 없고 만나지도 못할
전생 어느 눈물 고개에서 만났다가 헤어진
그런 바람이었나 봅니다
久遠의 나래 속에 지워지지 않을
♧ 후렴 - 강현국
큰일 났다, 봄이 왔다
비슬산 가는 길이 꿈틀거린다
꿈틀꿈틀 기어가는 논둑 밑에서
큰일 났다, 봄이 왔다 지렁이 굼벵이가 꿈틀거린다
정지할 수 없는 어떤 기막힘이 있어
色(색) 쓰는 풀꽃 좀 봐
伐木丁丁(벌목정정) 딱따구리 봐
봄이 왔다, 큰일났다
가난한 내 사랑도 꿈틀거린다
♧ 솔나리 - 김내식
무슨 말 못할 천형을 받아
비슬산 정상 바위틈에 머무르며
사철 끊임없는 바람결
비파 소리 들으며
가부좌 틀고 앉았는가
맵시는
운문사 사리암의
비구니 인데
솔잎 치마를 둘렀으니
쫓겨 난 게지
아침저녁 안개 실은
솔바람 타는 풍경 소리 기울이다
고요한 달밤에는
흰 구름 불러 타고
팔공산 큰스님께
가는구나
♧ 정상에서 보는 풍경
우리는 시간을 단축해야 하겠기에 바로 정상으로 향한 험한 코스를 택해 곧바로 올랐다. 정상 못 미쳐 커다란 바위인 전망암에 이르기 직전에 계단이 놓여 있었는데, 계단 아래 오른쪽에 설앵초 한 무더기가 피어 있어 다가가 찍으려 하다가 다른 곳에 또 있겠거니 하고, 그냥 올라갔는데 다시는 영영 볼 수 없었다. ‘야생화와 풍경은 봤을 때 찍어라.’ 하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일깨운 셈이다.
전망대 주변은 멋진 바위가 많아 돌아가며 풍경을 찍고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거기서부터 정상까지는 길이 가파르지 않아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정상 주변의 육모정자 두 개가 나란히 세워진 곳을 지나 천왕봉(1,084m)에 다다르니, 정상 표지석 주변에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인증샷을 하려는 모양인데 이건 너무 심하다. 언제부터 사람들을 그렇게 믿지 못하게 되었는지. 나는 내가 찍은 것이니까 사진만으로도 당연히 인증이 되리라 믿고, 또 안 믿는다 해도 자신만 인정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시간을 절약하여 그냥 찍는다.
♧ 비행기 시간을 고려해 다른 곳으로 내려
사실은 표지석 뒤편에도 한자로 '天王峰'이라 새겨져 있어 한자 세대는 이곳도 괜찮다고 일행을 이끌고 뒤로 가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쪽에 평평한 바위가 있어 간단히 쉬면서 입가심하고 원래 계획했던 월광봉과 참꽃군락지를 돌아 휴양림으로 내리는 길을 포기하기로 했다. 참꽃도 다 져버리고 차가 휴양림주차장까지 못 올라오기 때문에 비행기 시간을 대기 위해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가 막히는 불안함 때문에 항시 넉넉하게 시간을 남겨야 한다.
도성암 쪽으로 내리면서 보았더니, 아닌 게 아니라 참꽃은 다 지고 없었다. '아무려면 어떠랴 그게 주어진 운명인 걸'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산에 가는 건 마음속의 짐을 내려놓으려 가는 게 아닌가. 주어진 한계에서 즐기고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이다. 우거진 숲도 그렇고 가끔씩 보이는 철쭉은 우리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려와 시간을 물은 즉 5시간 조금 못 미쳤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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