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홍일점 석류꽃이라는데

김창집 2016. 6. 19. 07:45



6월도 하순으로 치닫는 시기

거리를 거닐다 보는 석류꽃이

더욱 붉어졌다.

 

고사 성어에서처럼 하나만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몇 개씩 얼려 피어 있는 꽃이지만

행인의 눈길을 끌기엔 충분하다.

 

홍일점(紅一點)여럿 가운데서 오직 하나 이채를 띠는 것

또는 많은 남자들 틈에 오직 하나뿐인 여자’.

여러 하찮은 것 가운데 단 하나 우수한 것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

영석류시(詠石榴詩)’에 처음 썼다.

 

萬綠叢中紅一點(만록총중홍일점)

動人春色不須多(동인춘색불수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중에 빨간 꽃 한 송이

사람을 들뜨게 하는 봄빛이 그리 많을 필요가 있나

     

 

석류꽃 - 오세영

 

짓밟혀도

순결만은 지킨다는 것이냐

마른하늘의 날벼락 맞아

육신은 지금 땅에 떨어졌다만

아니다.

정신까지 더럽힐 순 없는 것,

광란의 여름은 가고

오늘 나는 보았다.

마른 가지 그 꽃잎 진 자리

석류 한 알 푸른 하늘을 향해서

하얀 이 드러내

비웃고 있음을

마음에 없는 것은 또한

하늘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석류꽃엔 눈물샘이 있다 - 박백남

 

우리 집 뒤란에 홀로 서 있는 석류나무,

생전의 어머니 같다 서까래로도 쓰이지 못한 그 가냘픈 몸매,

자식 낳듯 세상에 초록 꿈 풀어 지붕을 만들던 힘은 흙에서 밤새 길어온 물이다.

그 물은 석류잎사귀에 반짝이는 이슬이 아니라 석류꽃이다

물동이 머리에 이고 황톳길 언덕을 힘겹게 넘어서며 얼굴 붉히던

 

그대 그리다 눈시울 붉어지듯 석류꽃 다시 피고,

초록 이파리에 이슬 떨어지듯 석류꽃 지고,

눈썹처럼 파르르 떠는 꽃잎 진 자리,

그곳에 석류알 그렁그렁 맺혀들어 가슴 깊이 빛나던 햇살 햇살들

 

그대 눈빛처럼 무척 따스하다

따순 눈빛에 비로소 가슴 맑게 틔여 세상을 바라다 보니

내 가슴속 알알이 맺힌 석류알

 

도저히 석류알을 깨물지 못하겠다

   

 

        

 

 

석류꽃 - 나태주


들판은 이제

젖을 대로 젖은 여자

사타구니

까르르 까르르

개구리 알을 낳고

꽈리를 불 때

바람은 보리밭에서

몰려오고

담장 아래

석류꽃 핀다

옴마 징한 거

저 새빨간 피 좀 봐

흰구름은 또 장광 너머

엉덩이 까벌리고

퍼질러 앉아

뒷물하느라

눈치도 없고

코치도 없네.

     

 

석류꽃 - 정용진


내 짝궁이

()같이 귀엽던

소꼽친구

내 짝궁이

 

대학 입학하던 첫날

 

석류꽃 같은

연지를 입술에 바르고

교문을 들어서다

들키자

화들짝 놀라!

 

그는 마침내

한 송이 붉은

석류꽃으로 피었다.

     

 

석류꽃이 걸어갔다 - 김종제


어제 꽃비가 내렸는지

석류나무에 화색이 만연하다

한 편 서사의 인생 같아서

요절하는 꽃도 있고

목숨 놓는 꽃도 있는데

떨어진 꽃 한 송이가

마지막 가는 길의 말씀 같기도 하고

회한의 눈물 같기도 하고

몇 송이 떨어진 바닥을 보니

들어갈 무덤이 보이고

저를 죽인 희생의 발자취 같은데

꽃이 나보다 늦게 나와서

나보다 먼저 흙으로 돌아갔으니

꽃 피고 지는 것이

생을 깨우치는 일이 분명하여

석류 열리기 전에

꽃 피어야 하는 이유와

피기도 전에 꽃 떨어지는 이유를

나무에 앉은 새에게 묻는다

꽃 걸어간 길 쫒아간다고

새 날아간 자리에

열매 하나 일찍 맺혔다

지난 번 그곳에서 석류 한 알 얻었는데

먹지도 못하고 버려둔 씨앗들이

꽃으로 피고 진 것일까

피 흘리는 가슴을 안고

석류꽃이 걸어오고 있었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지 무렵 병솔꽃나무  (0) 2016.06.23
치자나무 꽃향기  (0) 2016.06.21
돌오름 오가며 만난 숲길  (0) 2016.06.18
자귀나무 꽃의 사랑  (0) 2016.06.15
수줍은 분홍 메밀꽃  (0) 201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