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

김창집 2016. 8. 23. 23:55

* 입구

* 첨찰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운림산방


* 연못


* 운림산방(좌)과 살림집(우)


2016820일 토요일 몹시 더움

 

  진도에 간 김에 다시 운림산방(雲林山房)에 들렀다. 3년 전에 첨찰산을 오르기 위해 왔을 때는 112일이라 날씨가 선선했는데, 오늘은 너무 덥.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자리한 운림산방은 이제 남종화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첨찰산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가꾸어온 나무며 호수며 집들이 어우러져 명승 제80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찌는 듯이 더운 날씨, 오후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무 밑으로 들어서니, 어디선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호수 가운데 솟은 조그만 동산에 배롱나무가 피었고, 물속에서 노는 비단잉어가 한가롭다. 주위를 살펴 사진 두어 컷을 찍고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왼쪽에 첨찰산 쌍계사로 통하는 길이 있어 따라가 보니, 출입이 통제 되었다. 산에서 흘러오는 두 갈래의 시냇가에 자리했다고 쌍계사라 했다는데, 857년 신라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로 알려져 있다.  

  그 두 시냇가를 덮은 상록수림이 울창하여 천연기념물 107호로 지정되었는데, 진도군의 군목인 후박나무를 비롯하여,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동백나무, 생달나무, 붉가시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모여 있다. 그 외 나무를 따라 오르는 마삭줄, 송악을 비롯하여 졸참나무, 자귀나무, 느릅나무, 소사나무 같은 낙엽수도 섞여 있다. 그러기 때문에 첨찰산 기슭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천연기념물 상록수림과 오래된 절 쌍계사, 그리고 운림산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명승지의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소박한 나무들이 심어진 곳에서 오른쪽을 보면 앞에 운림산방(雲林山房)이 들어섰고, 그 뒤로 살림집이었던 초가집이 이어진다. 그 뒤 위쪽에는 소치 선생의 초상을 모신 운림사(雲林祠)와 양천허씨 제각이 있다. 다음에 앞으로 나오면 큰 건물이 보이는데, 소치기념관이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한눈에 척 들어오는 그림이 머리에 걸렸는데, 바로 소치의 스승 완당이 그린 세한도(歲寒圖)’.

 

  다음으로 운림산방 화맥도로 소치 선생 이하 후손 중 남종화의 화맥을 잇는 8분의 가계도를 그려놓았다. 조금 더 들어가면 오른쪽에 영사실이 있어 이곳에 관련된 영상물을 볼 수 있게 하였고, 전시관의 나머지 부분은 소치 선생과 그 후손들의 화풍 설명과 그림을 걸어 놓았다. 밖에는 남쪽으로 진도역사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운림산방(雲林山房) 화맥(畵脈)

 

초대 소치(小癡) 허련(許鍊)

2대 미산(米山) 허형(許瀅),

3대 남농(南農) 허건(許楗), 임인(林人) 허림(許林),

4대 임전 허문(林田 許文),

5대 허진(許塡)    



 

소치 허련 小癡 許鍊(1808~1893)

    -지성(知性)으로 피워낸 묵향(墨香)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허련은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성년이 된 후 해남으로 건너가 초의선사에게 학문과 인격을 수양하고 녹우당을 오가며 윤공재가의 3대에 이르는 명화첩을 통하여 그림에 다한 다양한 체법과 화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후 초의 선사의 천거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문하에 입문하여 본격적인 서화공부를 하게 되었고, 소치의 나이 42세 때 헌종을 알현하고 왕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영광을 누렸다.

 

  ‘소치(小癡)’라는 아호는 스승이 내려주었는데, 이는 중국의 대화가인 대치(大癡)’ 황공망(黃公望)과 비교한 것으로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고 극찬한 대목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또 시(), (), ()에 뛰어나 삼절이라는 미칭까지 얻은 소치는 49세에 고향에 돌아와 첨찰산 자락에 화실을 지어 소허암또는 운림각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오늘의 운림산방이다. 소치는 이곳에서 꿈에 어리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소치실록이라는 자서전을 집필하였다.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출생. 호는 소치(小癡), 자는 마힐. 초명은 유()라 하였으나, 후에 련(鍊)으로 개명

*1835(27)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문하에 입문, 본격적인 서화 수업.

*1847(39) 장남 은(+) 출생(통칭 큰미산)

*1849(41) 헌종대왕 앞에서 어연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으며 왕실 소장의 고서화에 대한 품평을 함. 헌종의 시법인문 하사.

*1857(49) 귀향하여 화실 운림산방을 세움

*1861(53) 넷째 형() 출생(통칭 작은 미산)

*1867(79) 벼슬은 통정대부를 거쳐 지중추부사까지 이름.

*1893(85) 9월에 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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