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족은바리메의 가을 예감

김창집 2016. 9. 19. 16:10


                                                                                            ↑ 까치박달나무


   * 2016년 9월 18일 일요일 흐림


 보통 때 같으면 추석 이튿날 오후 달맞이 산행, 토요일이면 해설사 식구들과의 산행, 그렇게 이틀 동안이나 산행을 했을 터인데, 제16호 태풍 말라카스가 몰고 온 비로 인해 모두 취소되는 바람에 몸이 찌부둥하고 추석 때 마신 술 찌꺼기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해 연일 개운치 못한 채 좀이 쑤신 이틀이었다.


 일요일은 어떻든지 비를 맞으면서라도 오름에 올라야 하겠다고 채비를 하고, 오름 식구 모이는 장소에 갔더니, 같은 생각을 했는지 회원 6명이 나와 있다. 하기야 이 오름 모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매주 일요일마다 스캐쥴이 없는 회원끼리 모여 산행을 계속해 온 팀이니까. 


 그래 오늘은 가깝고 오르기 쉬운 오름을 택해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맞춰 비 오기 전까지만 산행을 하기로 하고, 택한 곳이 애월읍 중심부에 우뚝 솟은 큰바리메와 족은바리메였다. 큰바리메 입구에서 빨갛게 떨어진 산딸나무 열매들이 널려 있는 게 보이더니, 곳곳에 추석날 바람에 떨어졌는지 산딸이 널려있다. 아깝다고 더러 골라 주으며 오르는데, 진범과 개승마가 피어 우릴 반긴다. 날씨가 환히 개이지 않아 전망은 그리 좋지 못했으나 오름 능선에는 억새가 피어 초가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내려와 쉼터에서 간단히 간식을 끝내고 옆에 있는 족은바리메로 향했다. 이 오름은 숲오름으로 고도가 높지 않은 까닭에 비탈이 심하지 않아 누구나 주변 풍광을 즐기며 걷기에 좋다. 우선 가을을 예감하는 부분을 찾아 블로그에 올리고자 찬찬히 살피며 걷기로 한다.

    


↑↓ 족은오름에서도 맨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것은 산딸나무 열매다. 제주에서는 이 열매를 '틀'이라 하여 산에 갔을 때 군것질꺼리로 따먹었다. 선친께서 소를 많이 길러 자주 목장을 찾았는데 이것을 따다 주어 어릴 적부터 맛을 알았고, 오름에 다니면서부터는 꽃이 필 때부터 익을 때까지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 다음 눈에 뜨인 건 대극과의 사람주나무. 잎이 넓고 크기도 하지만 중산간 오름에서는 제일 먼저 붉게 물들어 가을 정서를 살려주는 나무이다. 왜 사람주나무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씨 세 알이 들어 있는 열매를 보면 다른 것과는 차별화 된다. 올 가을에도 제일 먼저 물들어 오름 산행을 하는 분들에게 기쁨을 주리라.




↑↓ 협죽도과의 마삭줄도 봄에 빨갛게 물들어 떨어지는 늘푸른 덩굴식물인데, 여러 잎이 물들어 있는 것이 가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화등과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지금처럼 다 자라지 않은 채 나무 줄기나 담벼락에 바짝 붙어 있을 때는 망서리지 않고 구분이 된다.



↑↓↓ 갈매나무과의 까마귀베개 역시 요즘이 익어가는 시기이다. 정상 못 미쳐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늘어선 나무에서 초록색에서 누렇게 변했다가 점차 빨갛게 익은 다음, 완전 숙성이 되면 검게 변하는 것이다. 베개처럼 길쭉한 데다가 다 익은 까만 열매가 까마귀를 연상시켰으리라. 어렸을 때 따먹은 경험이 있다고 하나둘 따먹길래 먹어보니 제법 먹을 만하다. 




↑↓ 말라가는 청미래덩굴 줄기와 잎이 안타깝다. 비교적 낮은 지대에 있는 오름에 많이 분포되어 있고, 전국적으로 널려 있어 이름도 망개나무, 멩감나무, 멩게낭 등 다채롭다. 아직은 때가 안되었는 듯 이제야 붉은 빛을 띠어간다. 빨갛게 익어 나무에 매달린 채 올 겨울 오름을 장식할 것이다. 



↑↓↓↓ 포도과의 담쟁이덩굴 역시 가을을 빨리 알리는 식물 중 하나일 터. 그 중에 벌레 먹거나 상하거나 하면 지체없이 붉은 물이 들어간다. 이제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나무 줄기 위를 슬슬 기어오르는 것도 많이 보였지만, 가을 탐색을 하는 나의 눈에 제일 많이 들킨 것도 담쟁이다. 물론 나무 줄기가 거무튀튀해서 잘 드러나는 점은 있지만....  




↑↓↓

가을 담쟁이 - 소양 김길자

 

암벽 같은 세상

봄부터 아픔 달래며

손가락 끝에 생긴 염증 내 허물인 듯

뉘우치는 눈물로 치료하며

비바람에도 오르고 또 올랐다

내안에 나를 기다리는 곳까지

때론, 반갑게 손 마주 잡고

때론, 잡았던 손 놓쳐 허공을 헤매다

끌어안으며 손 사래질하던

날카롭고 까칠한 억척스러운 손

담쟁이 손톱 꽃물 들면

눈물도 가을 따라

그렁그렁 든 단풍 예술이겠다.




 

포도과의 개머루는 익어가는 열매의 빛이 다양하기로 유명하다. 머루라는 이름을 달고도 먹을 수 없는 게 개머루인 걸 보면, 색으로나마 위안을 삼는 것 같다. 왕머루, 새머루, 까마귀머루 등 달콤한 그 열매는 술을 담가도 좋다.



이 다래나무과의 다래나무는 열매는 간 곳 없고 무슨 벌레에게 이렇게 뜯겼을꼬?

오름에서 나오다가 발견한 국화과의 뚱딴지, 요즘 '돼지감자'라고 건강식 반열에 들었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이 꽃의 뿌리가 돼지감자라는 걸 알면 의아해 할 것이다.





'오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섬 시 '왕뫼오름 넉들임'  (0) 2021.03.18
거친오름과 너나들이길을 걷다  (0) 2020.10.06
12월 25일 오름 기행  (0) 2015.12.26
겨울, 어승생악 기행  (0) 2015.06.09
가을, 영아리오름 기행  (0) 201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