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12월 25일 오름 기행

김창집 2015. 12. 26. 11:25

*한라산이 보였다 말았다, 그래도 얼굴을 내밀었을 때(구산봉과 우보악에서)

 

크리스마스도 떠나보내고

이제

12월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서 있다.

 

‘올해는…’ 하고

그럴 듯하게 세운 계획을

별로 이루어놓지 못하고

내년으로 미루게 되리라.

 

어제는 오름 9기 여러분과 함께

서귀포시 서남쪽

옛 중문면 오름을 돌아보며 하루를 보냈다.

 

한라산에 구름이 드리웠다 걷혔다 하며

그 장엄함을 과시하고

오름으로 들어서는 길가

수확이 끝난 감귤밭으로 손을 내밀어

잎사귀 사이에 숨어 있는 감귤을 따

나누어 한 갑씩 입에 넣으니

차갑고 향기로운 즙이 달콤하다.

 

그러나 아직 따지 못한 감귤밭을 보면

마치지 못한 숙제를 마주한 것처럼 답답하다.

 

마지막으로

중문관광단지 안에 있는 베릿내오름에 올랐다가,

바닷가에 있는 해녀 할머니가 생각나

해변에 몰려가 소라와 문어, 멍게 등속을 주문해 놓고

12월, 늦은 오후 햇빛이 눈부신 바다를 보며

소주 한 잔 하고 돌아왔다.

 

* 아직도 다 못 딴 감귤(위)과 열매를 달고 있는 산딸나무(아래)

 

* 해변의 산국은 한창(위)이고, 따뜻한 구산봉 산비탈 서너 곳에서 발견된 술패랭이(아래)

 

* 여러 곳에 얼굴을 내민 제주수선화(위)와 고운 빛깔의 느릅나무 단풍(아래)

 

♧ 12월 끝자락에 서서 - 김덕성

 

12월 끝자락에 서서

한 해가 떠난다고

아쉬워하거나

우울해지지 아니했으면

 

마음을 가다듬고

비록 하루가 남아 있어도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녔으면

 

시련이 많고 힘들게 했던

한 해 일지라도

남은 시간만은

아름다운 열매로 맺었으면

 

짧다면 짧은 한 해를 접으면서

알게 모르게 받은

쪼그마한 사랑이라도

그 손길들을 찾아 봤으면

이제 보답하는 마음으로

감사의 메시지로 띄워 보내

알차고 보람이 있는

12월 끝자락이 되었으면 좋겠다

 

* 여러 곳에서 만난 먼나무(위)와 위싱토니아야자(아래)

 

♧ 12월의 사람들 - 박종영

 

한 해를 주섬주섬 나누어 가지며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12월의 사람들,

좋은 일 궂은일 슬픈 일

찬란했던 기억을 바람에 날려 보내어

어두웠던 시간을 완성하고

슬픈 노래 들리지 않는

먼 나라로 떠나는 12월의 사람들,

누구는 안쓰러운 얼굴로 따스한 훈짐을 얻어가고

한 줌의 흙 그 속에 따스한 생명을 추억하며

앞서간 낯익은 발자국을 따라가는 날은

얼마나 든든한 위안의 길이던가

서성이던 아픔의 시간은

철 따라 피고 지던 꽃의 이름으로 위안이 되고,

푸른 그늘과 붉게 익어가던 단풍의 교훈으로

슬픈 낙엽의 뼈를 담아가는 길에서는

질긴 생명의 메아리 높게 들리는데,

저무는 한 해, 세상의 모든 서러움에 대하여

무게를 달아보는 민둥한 겨울,

이제야 게으른 삶의 순간들이

힘차게 북채를 든다.

 

* 12월말 나무와 베릿내 모습

 

♧ 그대 12월에 오시려거든 - 오광수

 

그대 12월에 오시려거든

짧은 해 아쉬움으로 서쪽 하늘이 피 토하는 늦음보다

밤새워 떨고도 웃고선 들국화에게 덜 미안한 아침에 오오.

 

뒷주머니 손을 넣어 작년에 구겨 넣은 넉살일랑 다시 펴지 말고

몇 년째 우려먹은 색바랜 약속 뭉치는 그냥 그 자리에 두고

그저 빈 마음 하나 간절함 가지고 그리 오오.

이젠 진실을 볼 수 있는 헤아림도 있을 텐데

이젠 영혼을 이야기할 경험도 가졌으려니

오시면 소망하나 위하여 마당 앞에 불 환히 같이 피워봅시다.

 

그대 12월에 오시려거든

달력 끝에서 숨 바쁘게 팔랑 이는 바람이 등 돌릴 때 말고

늦가을 햇살에 느긋하니 감 하나 익어가는 지금 오오.

 

* 베릿내오름 화구쪽 풍경

 

♧ 12월 끝자락에서 - 목필균

 

한줄기 바람으로 흐른다.

멈출 수없이 날아다닌 시공의

긴 터널 속에 박쥐처럼 드나들던

어둠과 빛이 뼈에 박히고

돌부리에 채여 멍든 엄지발톱이

이제쯤 깎여 나가 잊혀질만한 아픔도

연륜 속에 상처로 묻혀진다.

 

한 줄기 강으로 흐른다.

언제나 낯선 허공 속을 퍼덕거리며

미숙하게 날갯짓하는 작은 새가

내일이라는 반투명 공간을 향해

접었던 날개 다시 펼친다.

 

* 구산봉 자락에서 간식을 즐기는 일행(위)과 베릿내오름 입구(아래) 

  

♧ 12월은 - (宵火)고은영

 

12월은 단장의 미아리고개다

쓸쓸하고 허전한 이별 고개다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에 설 꽃처럼 핀 애환

떠나보내는 세월의 각질들이 서러움으로 몰려오면

온통 그리운 것들의 잔치

가장 깊은 어둠에서 스무고개를 넘다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회한의 눈물 편지다

연약한 사랑이 뒷굽으로 돌아서는

12월은 사랑도 절망이다

새날을 기다리는 희망의 무덤에서

가장 절실하게 올려지는 고귀한 참회록이다

 

* 우보악 능선에서

 

♧ 마른 숲 - 장수남

 

12월의 마른 숲

너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녹슨 발자국들이 무거운 땅

내리 찍는다.

 

백지위에 까만 일기

남은 날짜 누가 지우는가.

 

양로원 할머니의 길고 긴

한 만은 사연

찌그러진 빈 라면상자

때 묻은 할아버지의 손끝에

남은세월 채우고 있다.

 

막 노동판 아저씨의

무거운 퇴근길

얄팍한 호주머니 포장마차

소주잔에 비워버리고.

 

오늘 쓰고 남은시간

내일새벽 너는 기다려 줄까.

가로등 하얀 입김 서리며

세월의 끝자락에 서서

마지막 가는 길목 누군가가

지켜주고 있다.

 

* 중문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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