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음새꽃
동면의 나무들은
영혼을 달래지만
너는
얼어붙은
땅의 껍질 깨고 나와
빚어낸
황금의 잔에
봄을 켜는
전령사
♧ 개나리야 개나리야
섣달에도 꽃을 피운
개나리야, 개나리야
미쳤니, 내가 왜 미쳐
봄여름 감고 풀며 멋지게 살았어야 가을엔 붉은 옷마저 다 털고 새봄을 위해 겨울잠에 푹 빠지려는데 모든
쇳덩이가 누비는 하늘과 땅 바다는 계절병이 들었는지 빙하가 풀리고, 더운 바람만 부니
그러니 난들 어쩌겠니
잠잘 수가 없어야
♧ 풍란
비자림
천 년 숲에
자리 튼 별자리마다
그늘진 곳을 향해
피워낸 매운 향이
남루한
내 영혼의 방에
새 창 하나
달아주네
♧ 진달래꽃 피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의 작은 화단에
새빨간 진달래꽃 무더기로 피어나서
내 마음 우울 한 자락 소리 없이 태운다
때론 산과 들에 붉게 물든 바람이
오가는 사람들 걸음을 붙들어 놓고
북쪽도 산문 활짝 열고 피었는가 묻는다
그때 들꽃들이 일제히 손뼉 치며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와와 외쳐대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퍼지는 슬픈 내 산하여
그래도 불침 놓은 멍든 대지마다
연둣빛 피리소리에 안개가 걷혀나가고
문 활짝 열리는 날엔 꽃잎마저 더 붉겠지
♧ 평화공원에서
무자년
그 슬픔마저
묻혀버린 짙은 안개
길 잃어 헤매던 넋
어느 날 무적霧笛소리에
동백꽃
각명비* 위로
혼절하며 떨어지네
--
* 4ㆍ3 때 희생된 사람들이 이름을 새겨놓은 비
♧ 들불 놓다
*
태워야 할 것들이 어찌 마른 풀뿐이랴
오직 나만을 위해 앞만 보며 달리던
탐욕의 배낭을 풀어
오름 자락에 널어놓다
**
하늘의 도움 없이 피는 꽃이 있겠냐만
반골의 마른 억새 바람의 손을 잡고
때때로 스크럼을 하고
파도타기 한창이다
해질 무렵 어디선가 꽹과리, 북소리에
달집 문이 열리고 잽싸게 달려 나온
처용이, 덩실덩실 춤사위에
잡귀들은 혼비백산
***
이제, 횃불을 높이 들어라
손 모은 가슴마다 기도의 문을 활짝 열고
외쳐라,
열,
아홉,
여덟…… 제로
불을 놓아라
번져라
불꽃이여
메마른 미망迷妄의 풀
너와 나 액이란 액 증오와 불신의 벽
반도의 허리띠마저 남김없이 활활 타라
까맣게 타들어간 불꽃의 자국마다
4ㆍ3 땅 굳을 대로 굳어버린 언 땅을 깨워
상생의 꽃 피우게 할
봄다운 봄 오게 하라
*오영호 시집 '귤나무와 막걸리'(정은출판, 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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