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3월호의 시와 산수유

김창집 2017. 3. 6. 19:40


우리’ 3월호가 나왔다.

주요 목차와 시 몇 편 옮겨

산수유 꽃와 같이 싣는다.

 

*권두 에세이 | 유진

*신작시 19| 임보 정순영 김두환 김복태 전인식 한옥순 임재춘 김기화 김경선 민구식 김혜숙 정선희 라윤영 최한나 여명례 정병성 조성례 이세기 정준원

*기획연재 인물| 이인평

*신작 소시집 | 신단향

*테마 소시집 | 박정순

*신인상 발표 | 장정순

*번역시 읽기 | 고정애

*시 에세이 | 이재부 남유정

*한시한담 | 조영임

    

 

 

산중다인(山中茶人) - 이성선

 

찻잔에 매화가 붉게 필 때

 

앞산을 낮게 나는 새가

그 발을

찻잔 물에 적시고 지나간다

 

허공에 갑자기 향기 감돌고

저녁 저 발이

누구의 가슴에 깊어지는데

 

새는 어디에 닿는가

 

닿고 닿지 않음

도달하고 도달하지 못함을

침 뱉듯이 보는 이가

 

내 뒤에서 조용히 차를 들고 있다

        

 

사람이 없다 - 임보

 

5천만 동포라고 하지만

막상 누구를 이 나라의 지도자로 내세울 것인가 찾아봐도

사람이 없다

 

만일 나에게 지방의 한 방백 자리라도 주어진다면

누구를 내 참모로 데리고 갈까 헤아려 봐도

사람이 없다

 

만일 내게 눈 먼 돈 한 1천억쯤 있어

공익재단을 만든다면, 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사람이 없다

 

아니,

술잔을 나누며 희희낙락 지내는 친구들은 더러 있지만,

내가 외로울 때 속마음을 털어놓고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없다

    

 

 

불씨 - 정순영

 

가을 하늘가에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꺼지지 않은

나의 불씨

갈바람에 춤추는 코스모스의 자태 때문이었구나.

산 어스름에 맑은 얼굴을 내미는 달은

장롱 속에 감추었던 내 그리움

노란 머리모양꽃 들국화

그윽한 향기가

귀뚜리 노래를 휘감네.

        

 

눈꽃 - 김두환

 

먼 길이지만 맘이 급해서

풀대님하고 헐근헐근 저으며 오는

임 앞에 환히 높직이 밝히고 있는

가로등꽃등이런가

 

저 꽃빛발은 여부없이 차분히

마음과 맘을 달래고 재촉해서

속속 덧붙이고 꽁꽁 결어 더 굳히는

선지先知 뻘건 눈빛이련가

 

고해와 다짐들 메아리 겨우 바듯하지만

그 울림 운김은 몇 천 볼트 높아서

물색마다 접해 일깨우는 여의如意*이련가

 

소리 없고 말없이 깊은 속뜻인데야

마침 무구수태無垢受胎도 보장하겠구려

 

---

*여의如意 : 스님이 설법할 때 손에 쥐는 작은 도구.

*무구수태無垢受胎 : 성모가 원죄 없이 잉태하는 것

    

 

 

모란은 부재중입니다 - 한옥순

 

바람결에라도 봄소식이 묻어오면

명치부터 아려왔다

종이비행기에 쓰인 모란을 닮은

이름 때문에,

 

그 꽃,

벌써 피었다가 졌다는,

아직 못 봤다는,

본지 한참이나 되었다는 소문에

몇 날 며칠 애를 태운

 

그 이름

모란을 닮은 그 여자

, 꽃 같은 여자를 누가 보았을까

어디서 보았을까

 

오늘밤은 전화를 걸어 봐도 될까?

 

꽃아 꽃아 너무 깊은 잠엔 들지 마라

봄날이 가려하니

아직은 아직까지는 봄날이 예쁘니

꽃술이 익어가는 봄밤에

나는 네가 지독스레 보고 싶으니

 

뚜 뚜 뚜 뚜 뚝,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이니

    

 

그 환장한 봄날 - 김혜숙

 

부실 부실하게 갈라진

틈새로 얼굴 내미는 새것들

졸졸대는 물소리가 싱그럽다

 

용천리 이장님의 마을 소식이

온 동리를 점령하고 졸랑대는

강아지 꼬리에 새순이 든다

 

물길 터진 부천집 농장에

앵두나무가 바람나고

매실나무에 열병이 나니

 

긴 설움에 울던 시금치가

서슬이 시퍼렇게 성이나

냉이와 쑥들이 조곤조곤

한 나절 시끄럽다

 

양평의 봄은 화들짝 피어

한바탕 소란스럽기 그지없이

가슴에 봄 타는 객주들을

불러 모아 봄을 지피는

그런 봄

    

 

- 정준원

 

삶이란 그런 거지

바람으로 왔다 가는

 

양지쪽 웃는 꽃이

흔들리는 이 아침에

 

가슴에 몇 줄기 숨결

품으며 사는 게지

    
 

 

알로에 오다 - 신단향

 

건강하라던

남자의 푸르고 싱그러운 웃음 속에서

알로에가 자라고 있다.

살지고 포동포동한 생동이 넘치는 건강 한 포기

저렇게 하늘만 향해 솟아오르는 철없는 푸름을

조각내어 먹는다는 것이 죄일 것 같아 조마조마해진다.

 

더 넓은 화분에 옮겨진 사막 한 줄기가

가물거리는 오후 나절을 딛고 있는 나에게 웃음을 건넨다.

생글거리며 서 있는 알로에의 우듬지 속에서

남자의 페로몬 향기가 피어오른다.

나른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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