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은
아니, 지나쳐버린 올 열한 달은
스스로를 가늠할 수 없도록
정신없이 지나가고 말았네요.
이제 11월의 달력을 떼어내고
뒤에 남아있는 12월과 마주합니다.
남은 한 달은
꼭 정신 차리고 제대로 보내서
올 2017년은 뭔가 남는
한 해로 기록하고 싶네요.
근래에 돌아다녔던 곳의 사진과
12월의 시를 모아 봤습니다.
♧ 12월의 詩 - 임영준
그래, 그렇게 해서
원하는 대로 다 되었는가
망망한 대양에
등대 하나 또렷이 심어놓았는가
몇 사발의 술로 깔끔하게
다 털어버릴 수 있을 듯은 한가
아니면 온갖 상처를 입고
막다른 길에 몰려
털썩 주저앉아 버린 것은 아닌가
어찌 되었든 이쯤에선
더 이상의 욕망은
남은 날들을 어지럽히는 것
단출한 행장이라도 꾸려
잠시라도 떠났다 돌아와야
비로소 보이는 우리네 섣달인 것을
♧ 12월엔 - 이희숙
그리움이 얼마나 짙어
바다는 저토록 잉잉대는지
바람은 또 얼마나 깊어
온 몸으로 뒤척이는지 묻지 마라
차마 말하지 못하고
돌아선 이별처럼
사연들로 넘쳐나는 12월엔
죽도록 사랑하지 않아도 용서가 되고
어쩌다보니 사랑이더라는
낙서 같은 마음도 이해가 되는 12월엔
♧ 12월의 詩 - 최홍윤
바람이 부네
살아 있음이 고마워 살아야겠네!
나이가 들어 할 일은 많은데
짧은 해로 초조해지다 보니
긴긴 밤에 회한도 깊네
나목은 다 버리며
겨울의 하얀 눈을 기다리고
늘 푸른 솔은 계절을 잊고
한결같이 바람을 맞는데
살아 움직이는 것만
숨죽이며 종종걸음 치네
세월 헤집고
바람에 타다
버릴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데
시간은 언제나 내 마음의 여백
세월이여, 나에게
한결같은 삶이게 해 주소서!
♧ 12월의 마음 - 홍문표
해마다 이맘때면
화해의 은총을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앙상한 한그루 나무이다
이미 책갈피에 끼워진 풀잎처럼
메마른 시간을 뒤척이며
씻겨간 바닷가의 잔해를 보며
한동안 소란하던
도적맞은 들녘을 보며
일그러진 얼굴과
지쳐버린 동공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소리
눈 덮인 초가집
그 단란한 식구들의 언어가 그립다
밤새 호롱불을 밝히며
달리던 강가
장승백이 언덕
교회당 가는 골목길
진달래 화관 쓰고 얼굴을 감싸주던
내 고향의 누이야
♧ 12월에게 - (宵火)고은영
끼니를 거르는 것도 아닌 것만
가중되는 쓸쓸함은 도태되는 계절에
진한 동질감을 느끼며 외로워지는데
그대의 얼굴은 밀랍 같아라
한 해를 마감하는 내 삶이 어두운 빙점이어도
고요한 그대 가슴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진정 아름다운 삶이었다
가슴 뭉클한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지리멸렬한 시간의 덫에 유배된 시간
행동이나 사고는 조루증이 심해 울지도 못하고
나태한 행적이나 죄 몫을
과거형으로 치부해 버리는 치졸함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 아니냐
막장 같은 인생이라도
결빙되는 이 추운 겨울 길을 잃으면
가난한 혼을 내밀어 어둠의 길을 밝혀주는
북쪽 하늘 개밥바라기별을 보나니
밤을 돌고 돌아 내일 아침 창문을 열면
해맑은 얼굴로 추위를 견디던 그리움은
그대의 가슴 한복판
쨍쨍한 서리꽃에 살포시 앉아있겠다
♧ 그대 12월에 오시려거든 - 오광수
그대 12월에 오시려거든
짧은 해 아쉬움으로 서쪽 하늘이 피 토하는 늦음보다
밤새워 떨고도 웃고선 들국화에게 덜 미안한 아침에 오오.
뒷주머니 손을 넣어 작년에 구겨 넣은 넉살일랑 다시 펴지 말고
몇 년째 우려먹은 색 바랜 약속 뭉치는 그냥 그 자리에 두고
그저 빈 마음 하나 간절함 가지고 그리 오오.
이젠 진실을 볼 수 있는 헤아림도 있을 텐데
이젠 영혼을 이야기할 경험도 가졌으려니
오시면 소망하나 위하여 마당 앞에 불 환히 같이 피워봅시다.
그대 12월에 오시려거든
달력 끝에서 숨 바쁘게 팔랑이는 바람이 등 돌릴 때 말고
늦가을 햇살에 느긋하니 감 하나 익어가는 지금 오오.
* 사진 설명(위로부터 차례로)
1. 추자등대(11.11.)
2. 서귀포 고근산 숲길에서(11.29.)
3. 고향 곽지해변에서(11.23.)
4. 한림항에 정박한 어선(11.22.)
5. 1100도로 휴게소 주변의 상고대(11.19.)
6. 새섬에서 보는 억새와 바다(11.19.)
7. 새섬에서 바라본 한라산과 서귀포 포구(11.19.)
8. 추자도에서 돌아오다가(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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