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지삿개의 파도로 더위를

김창집 2018. 7. 24. 10:41



지난 일요일

더위를 피해 곶자왈 올레(14-1코스)를 걷고

중문관광단지 제주컨벤션센터에 가서

점심을 먹는데, 창 너머로 하얀 포말이 보인다.

 

11호 태풍 우쿵이 중국으로 빠지면서

후폭풍이 몰려와 이곳 제주 서남쪽 해안이

몸살을 앓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중문 대포 주상절리로 가보았다.

 

현장으로부터 들려오는 함성은

파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를 맞으면서도

즐거워하는 건

날씨가 너무 더운 탓이리라.

 

오늘도 폭염은 여전하다.

이 파도 사진이

조금이라도 더위를 씻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파도를 보며 - 유안진

 

파도를 본다

도도한 목숨이 추는

어지러운 춤이여

 

울고 사랑하고 불타오르고 한탄하는

아아 인생은 위대한 예술

 

그 중에도 장엄한

서사시의 한 대목

 

바라건대 나는

그 어느 절정에서

까물치듯 줄어져라 죽어지기를

    

 



파도로 물결치는 열대야 - 안상인

 

잠을 잊은 밤아!

잠들지 못하는 삶아!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의 밤,

푸른 피돌기를 다시 시작해

파도물결로 출렁이는 검붉은 가슴,

하얀 포말의 이슬가슴으로 꼬박 새워서

얼차렷, 영혼에 생기로 곧추세웠다

 

열망하는 인생의 꿈이었나,

성취하는 삶의 비전이었나,

 

이 야망의 계절은

이글거리는 찜통에 가두고

우리를

푹푹 삶아 소독하여 정도(正道)의 길로

우리를

활활 태워 정화하여 사명(使命)의 길로

넌지시 인도하는 도다

 

하늘의 그 분께서.

    

 

 

파도는 밀려오고 - 松花 강봉환

 

아득히 먼 태고의 그림자를

부서지는 그리움으로 널 안을까

기다리면 일순간, 일그러지는 잔상

 

잠시도 지체 않으려 뒤엉키며

떠 밀려오는 고고한 그리움,

어김없이 원시의 시간을 넘나드는데

 

변화무쌍한 얼굴은 어디로 가고

겁에 질려 부서져버린 하얀 모습

이젠 소름마저 느껴지게 하는 구나

 

여기 무거운 짐 풀어 헤치고

달음질하며 달려온 나인데

하염없이 부서지는 잔상을 보며

무너지는 수많은 그리움은 끝이 없구나.

    

 

 

그대는 파도였을까 - 이영균

 

너의 거침없는 사나운 가슴팍

깎이고 페어도

묵묵부답 갯바위처럼

말없이 푹 파묻혀 버리고 싶다

-- 이 여름

뜨겁게 타들어가는 갈증 밀어내줄

그대는 파도였을까

썰물 따라 수평선 넘어 간 새

어느새 하얀 날개를 펼쳐

바다의 긴 비행에서 돌아와

하늘 높이 맴돌던

팔월의 뜨거운 태양

바다 속으로 붉게 식어 간

그렇게 사납던 파도 지처 쓰러지고

노을 진 해변의 추억들

하나 둘 하얀 백사장에 눕는다

별이 하나씩 깨어날 쯤

아 그대는 시원한 파도였음을    


 

파도와 같이, 몸살과도 같이 - 이향아

     -음악


음악은

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나이 든 여인의

파도치는 머리칼과도 같이

 

자욱한 해협의 끝간 데에서

굽이쳐 말려드는

몸살

 

눈감고 물을 켜듯

너를 들이키면

가느다랗게 흔들리는구나

 

파도와도 같이

몸살과도 같이

 

 

바다를 채찍질하는 파도 - 박상건

 

파도는 샛바람에 불붙어 눈을 뜨고

이녁을 던지고 비우며 해톧 같은 하루를 연다

하냥 그 마음으로 출렁이는 삶 쉬운 일만 아니어서

때로 바람과 실랑이도 하고

어망에 갇혀 뿔 빠진 황소처럼 너울 치지만

사투 중인 물고기를 그물코 밖으로 슬그머니 밀어주던 삶,

그 사랑의 힘이 부표의 부리가 되어 깃발을 흔든다

산다는 것은 희망의 깃발을 흔드는 열정이다

휘어진 무등에 어부를 태우고 그 함성소리 들썽이던 몰개들의 동행

 

파도는 부서지고 나부끼는 것만은 아니다

울고 웃는 아우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기쁠 때는 가슴 낮춘 은빛물결

슬플 때는 목청껏 해원(海原)의 노래를 부른다

한살매 부서지고 온몸 던지는 한 물결을 보면

세찬 바람소리 탈곡하다가도

평화의 성전 앞에서 엎드릴 줄 알고

떠나야 할 때 떠날 줄을 안다

 

오늘도 파도는 철썩철썩 청사(靑史)를 채찍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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