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사명대사를 기리는 표충비

김창집 2018. 9. 15. 14:35


2018911일 화요일 맑음

 

  제주와 광주를 잇는 여객기 시간을 늦게 잡는 바람에 12시가 넘어 도착한 일행은 점심을 먹고 고령으로 넘어가다가 중간에 조금 쉴 겸 길옆에 자리한 밀양읍의 표충비에 들렀다.

   표충비(表忠碑)는 영조 18(1742) 10월에 임진왜란 당시에 승병을 이끌고 왜병을 크게 무찔렀고, 종전 후에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로 일본에 건너가 전쟁포로를 데리고 들어온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태허당 남붕선사가 경북경산에서 돌을 채취해 지금의 자리에 세운 것이다.

 

 

  좌대를 포함한 총 높이는 380cm, 비신(碑身)의 높이 275cm, 너비 98cm, 두께 56cm의 거대하고 장중한 오석비다. 비신의 정면에는 유명조선국 밀양 표충사 송운대사 영당비명병서라 새겼고, 옆과 뒤로 돌아가며 서산대사 비명표충사 사적비를 새겼다.

 

  사적비 내용은 사명대사의 일대기로 중종 39(1544) 지금의 경남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서 태어나, 13세에 출가하고 18세에는 승과 시험에 합격하여 학식이 깊은 승려로 통했는데, 금강산에 들어가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어 도를 닦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의 지도자로 활약했고, 전후에 일본으로 건너가 평화협상을 성공시키고 3천여 명의 포로를 데리고 돌아와 은퇴한 뒤 합천 해인사에서 입적하게 된다.

 

 

  그러나 이 비가 유명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국가적으로 큰일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는 데 있다. 검은색 대리석으로 만든 평범한 비석의 몸체에서 물방울이 맺힌다는 것이다이 비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에 처음 땀을 흘린 이후, 지금까지 국가적인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왔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나라와 겨레를 염려하는 사명대사의 영험(靈驗)이라 하여 신성시 하고 있다.

 


  경내에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된 밀양 무안리 향나무가 있다. 수령 300년쯤 되는 이 향나무는 1742(영조 18)에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남붕선사가 표충비를 세운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 한다. 높이 1.5m, 둘레 1.1m 정도의 크기로 큰 우산을 서워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한, 나무 가지 수관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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