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산림문학' 겨울호의 시와 설경

김창집 2019. 12. 17. 17:11


옹이 강영순

 

오색약수터 위로

만경대 오르는 긴 골짜기

물은 맑고 맑아

산천어 속까지 다 보이는데

 

맑은 물에 비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저 모습

고목 둥치 다 썩어

허물어진 속살에

썩지 않은 옹이

송곳같이 비수같이

삭아진 속살 안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네

 

내 삶의 여한일까

남에게 심은 응어리일까

오르는 발걸음

내려오는 마음 갈피

맑은 물에 비친 마음

보고 또 보며

 

천지 어디에도

모진 옹이 남기지 않으면서

맑은 물 위로

떠가는 단풍잎처럼

가벼이가벼이 흘러가기를

깊은 산속 저무는 가을

간절한 나의 기도

 

 

겨울아침 - 김귀녀

 

까치 울음에 눈을 떴다

며칠 남지 않은 한 해가 아쉬운가.

온 몸이 무거워

벌떡 일어나지질 않는다

밤사이 눈이 내렸는지

대문간에서는

눈가래 끄는 소리가 들린다

눈길을 내는 동안

나는, 박 박 쌀을 씻어

늦은 아침을 앉힌다

현관문을 열고 밖을 본다

문 여는 소리에 놀랐는지

모과나무 위에서

아침 햇살을 맛보던

참새 몇 마리 포르르 싱그럽게

마늘 밭으로 내려앉는다.

핼쑥한 햇살더미와 함께

나도 하품을 털어낸다

    

 

나목 - 김내식

 

이 세상에 부귀영화

화려하게 꽃 피워도

한 순간에 떨어지는

잎새 같은 것

 

삭풍에 몸을 떨며

침묵으로 외치는

너의 모습이

애처롭고 아름답다

삶의 시작도

허무의 점찍고 가는 종말도

잎새 하나 없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고

 

벗은 몸으로 외치는

진리의 전도자

말 못하는 만물이

무지한 인간을 깨우치고 있다

    

 

겨울나무 곁에서 김청광

 

겨울하늘이

가을하늘보다

푸르다

 

옷깃 여미며

산을 오르면

유리벽처럼 다가서는

차가운 하늘

 

눈썹 떨리는

날 선 하늘아

지상의 나무들을 보아라

 

가슴 저미며

떨고 있는 목숨들 위에

눈이라도 함박눈

푸근히 덮어줬으면

 

발가벗은

겨울나무

한겨울 푸른 하늘이

너무 시리다.

 

 


하나 되다 김학순

 

눈 오는 날

산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군중 속 아우성은 구렁으로 빠져들고

하늘 산 길 모두 다름이 사라져

도란도란 하얀 꽃 피우기 분주하다.

하늘로 오름인가

온 세상 하얀 마침표 하나

콕 찍는다.

    

 

 


고향 산청 지리산 - 민수호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지리산 산청군

지리산이 무슨 요새인가

625전쟁 전후하여

김일성 부대도 천왕봉에 텐트를 쳤고

국군11사단 9연대도 텐트를 쳤고

견벽청야 작전으로

벽을 쌓아 빈 들판 만들어

죄 없는 양민, 농민들 700여 명을 죽였고

할아버지는 국군의 정조준 총에 맞아

억울하게 산화 하셨는데,

할아버지 등에 업혔던 10개월 어린이

나는 어떻게 살아났는지?

생존 역사 스토리가 단절 되었다

 

생시에 아버지도, 어머님도

아무런 이야기도 해 주시지 않았다

짐작한다

그 끔찍한 추억을 기억하기 싫었을 것이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하셨으리라

, 고향 산청 지리산은

질곡 애환의 함성들이 지리산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눈 부릅뜨고 있구나

오직

지리산 역사만이 알고 있는

지리산 너만이 알고 있는

갈등의, 용서의 끝을

 


겨울나무에게 유정

 

모든 것을 비우고

찬바람에

홀로 선 독신이여.

 

모든 욕망을 비워

다가오는 새봄에

거듭 푸르게 푸르게 일어서는

너의 말 없는 의지여.

    

 


겨울나무 2 - 이인평

 

살다 보니 나도 내 것이 아니더라

무엇을 위해 이토록 살았던가

찬바람 속에서도

열심히, 아주 열심히 살았지만

알고 나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더라

살과 뼈를 웅크리며

안간힘을 다해 버텨도 얼어붙는 몸

혹한 속에서도

죽은 다음까지도 내게 남아 있어 줄만 한

희망 하나 찾아 품는 것

동장군을 물리치고도 남을

오직 희망 하나를 품에 사는 것이더라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 최상호


겨울산 봉우리에 올라서면

면면히 뻗은 산줄기와

흔들리는 저 적송의 가지에서

그대의 혼 느낄 수 있다

 

먼 옛날 그대의 행적일까

감발도 못한 발로 수없이 밟았던

산천고을

버리지 못할 운명으로 이 땅 쓰다듬다가

역적에 몰려 태장 맞은 그 아픔이

갈맷빛 골짜기에

푸르게 넘쳐오고

 

고산자여

찬바람 시린 겨울산 언덕에 서면

소나무 껍질마냥 갈라진 그대의 손바닥이

다가온다   

 

                      * 계간산림문학2019년 겨울(통권 36)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