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고은영의 '섣달그믐, 그 아름다운 기억'

김창집 2019. 12. 31. 13:52


섣달그믐, 그 아름다운 기억 - (宵火)고은영

 

온 동리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냄새들이

온 마을을 휘돌아 내리고

그 해 섣달그믐에는 싸락눈이 내렸지요

 

새로 사온 빨강 모자 달린 나일론 외투에

새 바지, 그리고 까만색 새 운동화를 가슴에 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믐 밤

밤은 왜 그렇게 길었던지

 

동네 어귀마다 싸락눈이 밤새 사락사락 내렸지요

가슴 저미는 기억의 들창으로

동트는 아침은 잎 떨군 보리수 나뭇가지에서

참새들이 짹짹 노래하고

마당엔 밤새 소복이 싸락눈이 쌓이고

 

내 기억의 아름다운 창가에

환희로 당도하는 설날이 열리면

그리운 얼굴들이 나의 눈물에 피어납니다

세월의 저편으로 사랑을 놓고 떠나간

내 사랑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세월이 유수(流水) 같이 흐르고

그 시절 내가 내 어머니의 나이보다

더 늙어버린 지금, 외롭게 서성대는

, 건널 수 없는 나의 유폐된 고립

 

죽도록 그립다고 죽어도 그립다고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홀로 외로운 섬으로 남아

눈물 젖은 편지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