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겨울호의 시와 바다

김창집 2020. 1. 18. 14:09

  

수평선 김광렬

 

그대는 높고 나는 낮아도

 

그대는 높다 생각 안하고

 

나도 낮다 생각 안하는

 

어느 수평의 고른 지점에서

 

우리는 길게 고요하다

 

그대와 나 오래 평안하다

    

 

 

소금 허유미

 

필요한 부분만 씻자 불필요한 부분만 벗자

요새는 길도 임자가 있다더라 발끝으로만 걸으며

사뿐히 나이를 먹으려 해도 허리가 닳는구나

간밤에는 슬라이스 초승달 몇 점을 얻어오기도 했다

밤에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떠다닌다더라

윤달에는 새의 날개짓에 비위가 뒤틀려

똬리를 트는 묘기를 부린다는 소문도 있어

돋보기로는 안 보이는데 귀를 대면 바다는 읽히지

늘그막에 항해사가 되다니 예민한 후각은

휴대용 나침반보다 더 정확하지

갈매기 울음소리가 술 적은 머리카락을 휘젓네

창문 틈으로 새벽이 새나가네 눈꺼풀을 들어 닻을 올려야 해

푸른 타일로 에워싸인 낡은 대륙으로 떠나자

꿈은 물길 속으로 들어가 얌전하단다

정확한 영역으로 초점이 맞춰진 스푼 위에서

냄비로 하강하는 풍만한 바다 피에타

    

 

 

바다에 사는 새 현택훈

 

온종일 10층에서 물을 길어 올렸다

물은 배관을 타고

10층 바다에 썰물로 밀려왔다

나는 부러진 부리로 물을 찍어 먹었다

 

날아가기 좋은 벼랑이라고

일기장에 썼던 게 벌써 작년 겨울이다

 

저녁이 되면

밀물과 썰물은 쓸쓸하게 자리를 바꾼다

엘리베이터가 끌어올리는 지친 새들

새끼들이 새를 쪼아먹는다

 

11, 12층에 살던 새는

엘리베이터 타고 날아갔지만

언젠가 술집에서 건너 테이블에 앉아있었지만

 

이제는 날아가고 싶다고

갯바위에 똥 눌 때가 좋았다고

파도에 깎인 오피스텔 유리창에게 고백한다

 

                  *계간제주작가2019년 겨울호(통권 67)에서


 

-어제 내 고향 곽지리의 바다는 겨울바다답지 않게 환했다.

  하얀 조개껍질이 부서져 이루어진 아름다운 모래가 깔린 바다는

  햇빛이 날 때 물 위로 우려 비쳐 에메랄드빛이 된다.

 

  어제는 겨울 하늘 먹구름도 멀리 밀려간 맑은 날이어서

  더욱 밝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