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 호병탁
시인이 말이 많아야 하는가. 시의 언어가 함축적인 거라면 이미 이 말 자체에 생략이 내포되어 있는 게 아닌가. 열 마디해서 둘의 복합성을 얻는 것보다는 두 마디로 열의 복합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짧고 소박하고 조금 어눌하지만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실상 이런 시 쓰기 쉽지 않다. 과한 욕심이 될지 몰라도 한번 해보자.
♧ 물수제비
얄팍한 돌멩이 하나 던졌다
몇 번 담방담방 튀었다
그러나 내가 돌아온 뒤로도
수천만의 잔물결
호수를 붙잡고
달 쪼가리 부수며 울었다
밤새도록
♧ 평화
소나기 지나갔다
개밥그릇에 고인 빗물
그 속을 시침 뚝 떼고 흘러가는
하얀 구름 한 조각
어디론가
열심히 헤엄쳐가고 있는
조그만 벌레 한 마리
♧ 햇볕 좋은 봄날
진동개가 갑자기 왈왈 짖자
때까우 넓은 날개 쫘악 펴고
까우까우 때까우 소리치며 달려든다
진동개 질겁하고 줄행랑 놓자
때까우 그러려니 날개 접는다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온 진동개
둘이 봄 한나절 볕을 쬐고 있었다
가끔 심심하면 저런다
♧ 이미숙 시인이 잔을 들고 나를 똑바로 보며
미숙아라고 부르지는 마세요
♧ 연하장
말을 기막히게 그리는 종수 성님
신년인사로 손수 말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몇 자 적어 보냈다
답이 왔다
그림은 좋은데 그 아래
웬 낙서여?
*동인시집『포엠만경』8호(포엠만경, 2019)에서
-도립곶자왈공원에 백서향이 피었다고 해서 갔는데
가다오다 하나씩 꽃잎을 벌리긴 했지만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진 못했다.
한 열흘쯤 기다려야겠다.
그래, 겨울이어서 더욱 푸르게 보이는
콩짜개덩굴에 눈이 자주 갔다.
비교적 적게 붙은 걸로 골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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