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화(2) - 김병택
십년 전, 바다를 따라 걷다가 나에게
다가오는 파도로부터 소문을 들었다
소문의 깊은 구석엔
은밀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흔적들이 널려 있었으므로
파도에게 다가가 소문을 만든 자의
신상을 굳이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어두운 이익도 차지하고야 마는
억센 성격의 소유자였다
소문은 잠시 하늘과 바다를 헤엄치다
마을에서 마을로 퍼져 나갔다
복수를 위해선, 소문을 만든 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이었다
얼마 후, 사람들은 소문의 강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를 보았다
♧ 연쇄
바람이 불어
나무가 흔들리면
땅위에 살고 있는
미물들이 흔들린다
곧 이어
사람들의 기억도
사람들의 정신도
사람들의 의지도
덩달아 흔들리고
마지막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함께 흔들린다
♧ 확인
누비 흩날리는 날에도
우리 지 텔레비전에서는
과거의 빛나는 일상을 붙잡으려는
위정자들의 얼굴이 북적였고
숫자들이 놓여 있는 달력의
무료한 공간에는
경제 플래카드와 통일의 깃발이
수시로 펄럭였다
못과 함께 박히는 망치소리와
시장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예전처럼 되살아났다면
새로운 바람의 행진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영화의 한 장면에 앞서
들려오는 말발굽소리가 없어도
박수를 칠 수는 있었으리라
오늘, 이렇게 오랫동안, 바람이
가슴 한 구석에서 멈춘 이유를
나는 몇 달 전부터 집작하고 있었다
*김병택 시집『떠도는 바람』(새미, 2010)에서
*사진 : 요즘 한창 피어나는 산자고
--어제는 안덕면에 있는 대병악과 소병악엘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비도 오고 쓸 원고도 있어 집안에 있습니다.
긴히 할 일이 없어도 세상 구경 다니던
아니면 운동 삼아 거리나 소공원을 걷던 예전과는 달리
하릴 없이 오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집안에 칩거해 있는 듯합니다.
집안에 있으니 자연 휴대폰에 손이 가
아는 사람들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니
어김없이 답장들이 옵니다.
답장들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위안의 뜻을 담은 것이나 ‘힘내자’는 것들도 있지만
억지로 만들어 낸 이야기거나 누구의 탓처럼
불안을 더욱 부추기는 글들도 더러 있습니다.
서로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하여도 모자랄 판에
앉아서 하는 일이 고작 그런 것뿐인가 하는 생각에
그런 사람이 가엾어지기까지 합니다.
솔직한 이야기와 불행한 이웃에 대해
용기를 북돋는 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경업 시 '꽃을 피운 바람의 독백'과 현호색 (0) | 2020.03.11 |
---|---|
오영호의 시 '산 숲에 들다'와 노루 (0) | 2020.03.10 |
고은영의 시 '희망하는 봄'외 2편 (0) | 2020.03.02 |
박얼서 시 '오늘이 일생이다' (0) | 2020.02.29 |
김정숙 시 '봄 바이러스' 외 (0) | 2020.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