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홍해리 시 '아름다운 남루'와 산수유

김창집 2020. 3. 12. 17:36

 

♧ 아름다운 남루

 

잘 썩은 진흙이 연꽃을 피워 올리듯

산수유나무의 남루가

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을 솟구치게 한

힘이었구나!

누더기 누더기 걸친 말라빠진 사지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부터

잘잘잘 피어나는 꽃숭어리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리

노랗게 환청으로 들리는 봄날

보랏빛 빨간 열매들

늙은 어머니 젖꼭지처럼, 아직도

달랑, 침묵으로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시멘트 아파트 화단

초라한 누옥 한 채

쓰러질 듯 서 있다.

 

이 막막한 봄날

누덕누덕 기운 남루가 아름답다.

 

            -『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홍해리 시선집『洪海里는 어디 있는가』(도서출판 움, 2019)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산수유 꽃

 

 

-- 어정쩡한 나날이 속절없이 간다.

   그래서 꽃이 피어도 꽃답지가 않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진정되어

   꽃을 제대로 느끼는 일상의 행복을 누려야 할 텐데….

 

   이게 통 보이지도 않고

   걸린 사람도 알 수가 없으니 갑갑하다.

 

   그래도 이를 퇴치하기 위해 힘쓰시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하루빨리 마(魔)의 동굴을 벗어나기 위해

   너도나도 힘을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