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조영임 교수의 '역병과 한시'에서

김창집 2020. 3. 14. 00:01

 

고요하고 적막한 정수사에서

종일토록 말을 나눌 사람 없어라

남쪽 들창 아래에 홀로 누워서

구름 보니 눈앞이 흐려지누나

 

寥寥淨水寺, 終日共誰言.

獨臥南牕下, 看雲淚眼昏.

           -「정수사에서 역병을 피하다(避癘淨寺)」,『명재유고 明齋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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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 윤증(尹拯, 1629~1714)이 81세 때 역병을 피해 정수사에 머물며 쓴 시.

 

 

한 달가량 병을 앓아 사람들이 피하므로

사립문을 남들에게 열어주지 못하는데

이웃집의 여자아이 그걸 어찌 알겠는가

담장 위로 나비 날면 번번히 쫓아오네

 

吾病三旬被衆猜, 柴門不敢向人開.

隣家小女那能識, 一一墻頭趁蝶來.

 

약 달이는 화로에 불이 가물거리는데

병난 뒤로 잠이 줄어 잡념만 가득하네

새벽 종소리 나를 일깨워 줘 고마우니

항상 친구 음성을 듣는 듯한 느낌이네

 

藥爐殘火有孤明, 病後無眠百慮盈.

多謝曉鐘偏起我, 每回聞似故人聲.

                 -번암집(樊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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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역병에 걸렸을 때 쓴 연작시 중 2편.

 

 

한 줄기 봄바람에 눈물 섞어 세월 보내는데

적막한 곳에서 어찌 좋은 경치 그리워하겠나

봄바람 다 분 줄도 몰랐는데

빈 뜰에 두견화가 모두 떨어졌네

 

一春和淚送羲娥, 寂寞何曾戀物華.

不覺東風吹欲老, 空庭落盡杜鵑花.

        -「우연히 짓다(偶題)」,『백담집(栢潭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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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령(具鳳齡, 1526~1586)이 쓴 시로 ‘두 아이가 천연두를 앓다가 한 달 안에 모두 죽어 광주 땅에 임시로 매장하였는데 살을 베는 아픔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는 세주가 달려 있다.

 

 

               *월간 『우리詩』(2020년 3월호, ‘한시한담’)에서

                      *사진 : 요즘 한창 피어나는 완두콩 꽃

 

 

--이 글은 조영임 교수가 오랫동안『우리詩』에 연재해온

   ‘한시한담’ 3월호에 나오는 시들이다.

 

   이걸로 보면 역병(疫病)은 언제나 있어왔고

   격리하는 것이나 혼자 떨어져서 지내는 걸 보면

   오늘날과 ‘거리 두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나이 드신 분이 병을 피해

   절 같은 곳에 피하는 것도 한가지다.

 

   우리 선조들도 이런 지혜를 발휘하여

   언젠가 사라지길 바라며 참고 견뎠던 것이다.

 

   너나없이 관심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치료에 힘써

   하루빨리 역병을 물리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