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공원의 봄
어디서 들려오나
하얀 음표들이
4월 바람 타고 벚꽃으로 흩날리는
한라산 거친오름 자락
붉은 울음
동백꽃
♧ 각명비를 읽다
오늘도 떠나지 못한 늙은 산비둘기
막힌 코 어두운 눈 뚫어주고 닦아주는
4월의 절물휴양림 솔향기가 불고 있다
힘겨운 날개 죽지 삐걱대는 다리 들고
마지막 비행이듯 천천히 날아올라
서너 번 거친오름* 돌아 각명비*에 앉았다
까만 빗돌마다 빼곡히 박힌 이름들
또렷이 쳐다보는 눈 뜬 임의 얼굴
70년 한의 말씀을 침묵으로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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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평화공원을 품은 오름.
* 4․3 때 마을별로 희생된 분들의 이름을 새긴 비.
♧ 서천꽃밭으로 꽃배 타고 가소서
-관음사 유적지에서
4·3의 퍼런 서슬에 초토화 된 마을마다
목숨 하나 숨겨줄 곳 찾지 못한 주민들
한라산 너른 품속이 야속하기도 했으리
사상의 광풍 속에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아버지 삼촌 형님들 죄인 아닌 죄인 되어
날마다 총 맞아 죽고 죽창에 찔려 죽은
원혼들 삭히고 삭힌 71년 세월 품고
연둣빛 봄바람에 슬픈 향기 날리는
들꽃들 진혼가를 부르며 부르르 떨고 있네
가신 임 호명하듯 뎅그렁 풍경소리
아미산 동박새들 유적지로 날아와
그 이름 동백 꽃잎에 음각으로 새길 때
천상의 문을 여는 관음사 범종소리
꽃 진 자리마다 우담바라 꽃이 피고
꽃배가 천천히 다가와 어서 오라 손짓하네
그래도 남은 피멍 가피로 씻어내는
발원의 염불소리 모든 것 다 내려놓으시고
훨훨훨 서천꽃밭으로 꽃배 타고 가소서.
♧ 도령마루 곰솔
그해 미친바람에 희생된 예순여섯
곰솔들 나이테 따라 삭혀온 70여년
그 진실 증명하듯 사철 저리 푸르다
입만 벙긋해도 잡혀가 사지四肢 뒤틀리던
금기의 빙벽을 깬 ‘도령마루 까마귀’*
빨간 옷 벗겨 달라고
절대로 잊지 말자고
하늘 빙빙 돌며 피맺힌 울음소리로
오늘도 하나하나 눈물로 새기는 것은
백비白碑에 정명正名 다는
이정표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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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기영의 단편소설(1979년)
*오영호 시조시집 『연동리 사설』(다층현대시조시인선 003, 2019)에서
--4월도 중순에 들어섰다.
코로나 때문에 4․3 72주년 시화전 개막식도
일주일 넘겨 오늘(11일) 11시에
4.3평화공원 문주에서 진행하게 된다.
제주4.3 72주년 추념 시화전의 표제는
‘돌담에 속삭이는’이다.
8월 31일까지 전시되는
이번 시화전에는 제주4.3은 물론
평화와 인권, 화해, 상생 등을 다룬
시화작품 63편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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