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들(1)

김창집 2020. 5. 8. 07:45

 

♧ 올봄은 – 조병기

 

너 어느새 곁에 와 있었구나

엊그제는 동박새가 다녀갔는데

오늘은 동백 목련이 피었다고

누이가 전화를 한다

군자람 꽃 한 송이

사진 찍어 보낸다

어느 바람이 왔다 가는 줄도 모르게

너는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느냐

창문 열고 하늘을 바라보며

널 따라 잃어진 것들 찾아 나서고 싶구나

 

♧ 수런거리는 풀밭 - 권애숙

 

오늘 너는 너른 풀밭에다 코뚜레 벗긴 소를 푼다

 

구름이 흐르는 쪽으로 서너 마리 날개 푸른 새도 날린다

 

물가에서 올라온 붉은 꽃들이 낮은 풀숲으로 번질 때

 

너는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붓으로 천천히 너를 칠한다

 

커다란 너에게서 어린 네가 걸어 나온다

 

맨발의 고요가 흔들리는 오후

 

수런거리는 풀밭이 완성된다

 

♧ 봄 – 정성수

 

마른나무에 귀를 갖다 대면

나무가

물을 빨아올리는지

 

모터 돌리는 소리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온몸 구석구석 실핏줄까지 보일러가

뜨거운 물을 보내면

봄은

온몸이 근질거린다며

참새 혀 같은 잎들을 밀어낸다

 

봄의 간절한 몸부림이 비로소 봄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었다

 

♧ 풀새 – 김성중

 

이 세상에 모르는 새가 많기도 많아

 

참새 어치 까치 붉은머리오목눈이

직박구리 검은등뻐꾸기 오색딱따구리

개고마리 소쩍새 까마귀 휘파람새 부엉이

 

이 새 이름은 처음 듣는 풀새

이 새는 어찌나 빠른지 본 사람이 없고

이 새는 모양도 크기도 알 수 없고

이 새가 어디에 사는지 아무도 모르지

 

앞집 감나무에서 직박구리 요란하게 까부는데

벌써 저 곡정보 쪽으로 날아가 버린 풀새

 

♧ 고백 – 양윤정

 

어깨는 반쯤 줄고 목소리는 모퉁이에 삐죽 서 있어도

생각은 가로등 빛 안에 모여들어 가슴이 윙윙거려도,

분명 한번쯤 용기 낼 수 있을 거야

 

고요한 별빛에 입술이 떨리고

너의 눈 안에 붉어진 내 볼을 가리고 싶지만

어둠을 견제하던 침묵이 느슨해져 뽀얗게 웃으면,

 

심장의 향기는 이미 네 가슴과 닿아 있을 거야.

 

♧ 전화위복 - 민문자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면

현대를 사는 세대는 얼마나 행복한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전에 태어나

젖도 모자라 암죽 동냥젖으로 성장

늘 황새라는 별명으로 여름은 학질

겨울에는 홍역기침으로 고생했었네

 

일부 학자금 면제 혜택도 입으면서

어렵게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 있어서

그래도 동년배 중 운이 좋았던 셈이지

돌아보니 그 시대 몇 안 되는 행운아

온 국민이 땀 흘리며 경제력을 키울 때

시골처녀도 결혼해서 미약한 힘을 보탰네

 

사업하는 배우자 만나 조력하느라

주경야독 수십 년 고생하고 결국

그 경험은 실패의 큰 흉터로 남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것도 행복이었지

만일 사업이 성공했더라면 어찌

지금의 행복을 맛볼 수 있었으리까

 

어려운 중에도 배움이 살길이라고

여러 분야 스승과의 소중한 인연

계속은 힘이 된 세월이 인내를 키웠지

그중에 문학과의 만남은 인생의 큰 선물

신뢰를 삶의 지표로 곧추세우고

공부하는 자세 견지하니 여기까지 왔네

 

사업실패가 전화위복으로 둔갑해서

문학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

오빠 같은, 언니 같은 인생의 선배

동생 또 딸 같은 벗들을 만나게 했네

여기저기서 열리는 문학행사와 문학기행

시낭송회는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 오늘의 메뉴 – 차영호

 

바다를 해안선으로

돌돌

말까?

 

단무지 대신 파도

시금치 대신 바람

달걀 대신 섬

 

구름 도마에 올려놓고

낮달로 또각또각 썰면

 

온갖 꿈

담뿍 담긴

 

바다

김밥

 

                        * 월간 『우리詩』 2020년 05월 383호에서

                        * 사진 : 2020년 5월 3일 한라생태숲에서 찍은 새우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