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의 산이 되어 – 박종영
가장 현란하게 색칠한
푸른 7월의 산을 만나기 위해
산수국 향기 가슴에 달고 산을 오른다.
가파른 산등성이 듬성듬성 피어
마음 설레게 하는 솔나리 눈웃음에 마음을 빼앗기고
쪽빛 하늘을 이고 달리는 푸른 동백,
그 울창한 숲에서 짝짓기하는 동박새 분탕한 날갯짓 소리
더운 여름 속 타는 마음을 뒤흔들고
빛바랜 입술은 산도라지 웃음 찍어 곱게 칠하면,
내가 나를 의심하는 세월은
짙푸른 녹색의 그늘에서 환하게 열리는데,
올곧은 길 위에 서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7월의 우주를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어
나 스스로 산이 되어 풋풋한 기운 오래 안을 수 있는지?
늘 그렇게 짙푸른 7월 너에게 묻는다.
♧ 서러운 편지 - (宵火)고은영
나는 가슴이 시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아카시야 향기 진동하고
골목에 산수국 뽀오얀 얼굴들이 환한데
초저녁 헛헛한 발걸음 하나 있다
세상은 더러더러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데
서쪽을 배회하는 빛의 소멸로부터
어둠이 깊어갈수록
내 심장에 가시로 박힌 방황하는 영혼아
지금은 어느 어둠에서 웅크린 채
고독의 극점에서 앉아
뭉클한 고통으로 울고 있느냐
방황은 삶의 지극한 에고일 뿐
우리에게 어떠한 진리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환락은 어떠한 시편도 그려낼 수 없는 것이다
초라한 시간에 조여 오는 가슴으로
너는 오로지 답답한 이 밤을 계수하고 있느냐
사람이 왜 사람이겠느냐
제대로 된 삶이라면 가슴이 시키지 않는 일을
결코 우리가 해선 안 되는 일이란다
♧ 한라산 까마귀 - 한도훈
뻐꾹채 엉겅퀴 도채비운장이
백록담 멧부리로 나란히 줄 서고
산 그림자 사이로 얼굴 빼꼼 내밀다
빙애기 채가듯 똥소리기 발톱에 채인
생채기 난 햇살이라
한라산 까마귀떼
갈보름에 휘날리는 검은 날개로
머리 풀어헤친 여인상이 뚜렷한
한라산 꼭대기며
신선(神仙)의 집, 영실기암을 휘저으면
멀리 서귀포 바당으로부터
안개꽃은 시샘으로 피어올라
윗세오름 노리샘 언저리
주목나무숲 너덜바위에
한무데기 한숨 따위 부려놓으라
한라산 까마귀 서늘한 이망생이에
와들락와들락 삼족오(三足烏)가 새겨지면
숨비소리 비바리 사랑으로
천년의 이끼
만년의 이끼 청동거울을 닦으라
벌거벗은 태양을 인두로 지져
가슴 떨리게 하면
비룽비룽 흐르는 용천수는
불로불사야약(不老不死藥)으로
호루종일 쏟아지는 정방폭포가 되고
흰사슴 징검징검 백록담을 걸을 때
갈래죽으로 움푹 떠
설문대할망 스란치마 속에 쏟아붓고
똥소레기 부리로 콕콕 쪼아 만든
성산일출봉이며 산방산을 불러 모아
해마다 봄이면
호꼼 진달래꽃 영쿨로 춤추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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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채비운장 : 산수국에 대한 제주도 방언
★ 빙애기 : 병아리에 대한 제주도 방언
★ 똥소리기 : 솔개의 제주도 방언
★ 갈보름 : 서풍에 대한 제주도 방언
★ 바당 : 바다의 제주도 방언
★ 노리 : 노루에 대한 제주도 방언
★ 이망생이 : 이마에 대한 제주도 방언
★ 와들락와들락 : 와당탕와당탕의 제주도 방언
★ 숨비소리 : 해녀들이 잠수를 끝내고 나와서 내지르는 숨소리.
★ 비바리 : 처녀의 제주도 방언
★ 비룽비룽 : 구멍이 송송이라는 제주도 방언
★ 호루 : 하루의 제주도 방언
★ 갈래죽 : 흙을 파는 삽에 대한 제주도 방언
★ 설문대할망 : 한라산을 만든 할머니
★ 똥소레기 : 독수리의 제주도 방언
★ 호꼼 : 조금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
★ 영쿨 : 넝쿨의 제주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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