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혜향' 2020년 상반기(제14호)의 시

김창집 2020. 7. 14. 16:44

산사에서 2 - 강상돈

 

 

걸어가도 어둠 속, 홰치는 소리 따라가고

초승달도 소원하나 간직하는 시간에

부처는 가부좌한 채 열반경을 외고 있다

 

그 누가 가슴에다 상처를 놓았는지

번뇌의 아픔들이 봉합되지 못하고

잠 설친 새벽별만이 긴 묵상에 잠긴다

 

그까짓 아픔쯤은 견디면 되는 거지

백팔 번 절을 하며 번뇌를 내려놓을 때

남국사 풍경소리가 내 마음을 울린다

 

바다풍경 김대봉

 

 

바다가 경을 치네 아 난바다 풍경이네

앞의 절도 운다, 노대도 절이란다

 

山寺

못다한 공양

 

바다에나

지들일까

 

바다는 조각 중 김성주

 

바다의 내장을 훔친 갈매기를 본다

새끼들이 있을 바위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바다는 저의 조각물을 몇 걸음 물러서서 본다

또 다가와서 정으로 쫀다

 

그때마다 정소리

제 안의 불을 내뿜는 현무암의 비명

어우러져 철썩철썩 파도를 만들고 있는 바닷가 카페

 

먼저 바다로 간 친구여

넋 놓고 앉은 내가 안쓰러운 것이냐

먼 길을 걸어 내 맞은편에 앉은 너

아무 말 없는 우리

바다가 되고 현무암이 되고

서로 몸 바꾸기를 몇 번

 

누구의 내장을 훔친다거나

누군가에게 훔침을 당한다거나

삶은 그런 거라고 갈매기가 끼룩끼룩 창가를 지나간다

 

철썩철썩

바다는 조각 중이다.

 

가파도청보리밭을 거닐다 김용길

 

 

벼르고 벼르다

물 때 맞춰 택한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어쩌랴, 파뿌리 같은 실비 맞으며

섬에 올랐다

 

솥뚜껑 같은 섬 가운데

넘실거리는 청보리밭

사잇길을 유영하듯 걸었다

 

바람에 밀려

멍석처럼 말아오는 파도

섬은 허공에 뜨고

나는 보리밭가에서

허수아비가 되어

봄을 불러들였다.

 

우리집 명자나무 - 김희운

 

 

우리집 명자나무 틈만 나면 묵언 수행

 

수시로 때때로 닫아버린 말문엔

저 혼자 되새기는 말 혀에 그물을 쳤나

딸 아들 걸렸을까 서방 놈 걸렸을까

살아온 날 한숨이고 살아갈 날 걱정이면

그저 예, , 그저 예, , 비위 맞춰 살면 되지

짧아지는 이승의 시간 욕먹으면 안 되는 거지

 

, 하고 어깨 죽지로 내리치는 죽비소리

 

하나 둘 셋 문태길

 

하나뿐인 일편단심 오로지 한길로

둘이 아닌 곧은길 찾고찾아 나서면

셋방에 살고 싶어도 넓어지는 우영밭

 

넷에는 춘하추동 동서남북 사방팔방

다섯은 오복이고 오대양 육대주라

여섯은 일상생활에 기본적인 육하원칙

 

일곱은 행운의 숫자 서구에선 럭키세븐

여덟은 팔팔 뛰니 합치면 양팔이요

아홉 번 죽는다 해도 단 한번 구사일생

 

괄호 안 인생 이창선

 

스님은

나를 보며

‘( ) 밖 사람 같다기에

날마다 관음정사 찾아가 부처님께

부처님 손 안에 들기를 기도하며 절한다

 

어느 날

노스님*

내 괄호 안을 보는지

어둠이 스며드니 ( ) 밖 세상을 보라

그 또한 ( )* 안 세상이 청명한지 거듭 묻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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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님 : 관음정사 회주 효덕스님

*( ) : 합장의 의미

 

 

                         * : 혜향14(혜향문학회, 2020)에서

                                  * 사진 : 서울 봉원사 경내 연꽃(2017.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