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김연미의 시조 산책

김창집 2020. 7. 23. 18:27

이중섭, 양하꽃으로 피어난

 

그 남자

성긴 어깨엔

바람이 늘 머물렀다

 

섶섬이 보이는 자리

예감된 외로움처럼

밑그림 안개 사이로 문득 솟은 슬픔처럼

 

감싸 주고 싶었지

초록의 울타리 치고

실선 따라 피어나던 아이들 웃음소리

겹겹이

손을 내밀며

그 여름을 넘다가,

 

빛이 바래질수록 그리움은 짙어져

더 낮게 엎드리며 빈몸이 된 늦가을

 

뿌리째 꽃이 되었네

양하꽃이 피었네

 

 

당신이 참 낯설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별에서 살지

 

별자리 운세 풀이에도 알 수 없던

너의

 

몇 광년 건너가면

옷자락에 닿을까

 

휘어진 시공간을 빠져나올 수도 없어

 

창가의

별빛에

기대

 

잠이 들곤 했었다.

 

잔돌이 되어

 

반쯤 포기한 이력에 방점 하나를

꿈꾼다

어머니

걱정들이 자잘하게 흩어진

 

텃밭의

돌들을 모아

탑을 쌓아 올린다

 

무너지지 말아야지 돌다짐

다지는 마음

크기에

정비례하는 제자리를 순응하며

 

잃었던

반쪽을 찾듯

빈틈들을 메운다.

 

감싸 안은 어깨들이 떠받치는

작은 세상

그 세상

어디쯤서 나도 잔돌로 서 있을까

 

후덕한

돌탑의 허리께

가만, 만져 주고 싶다.

 

달맞이꽃

 

한쪽에 서서

돌아갈 줄 몰랐지

 

달 뜰

무렵에야

가만히 고개 드는

 

얼굴이

노랗던 아이

젖은 눈이 고왔지

 

악몽이면 좋았을

목이 꺾인 그 시간

 

열일곱 여린 눈물이

줄기를 타고 올라

 

뜨거운

상처 속으로

달 하나를 품는다.

 

노루귀 산천

 

기다림에 지친 숲이 봄으로 갔어요

신동엽의 진달래 산천 아직은 먼 삼월 어귀

 

노루귀

분홍 노루귀

해방구가 여기네요

 

마지막 산사람 귀 한쪽 열어두고

냉전의 뿌리를 베고 잠이 들던 그 자리

지워진

파편자국에

귀만 남아 피네요

 

빈숲에 겨누었던 총부리 거두는 봄

햇살 환한 사람들이 한 줄로 찾아와서

노루귀

하얀 노루귀

무릎 꿇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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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엽의진달래 산천차용.

 

                       □ 김연미 시조집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천년의시작, 20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