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견디어야 하는 시간 – 권비영
코로나 19로 인해 세계가 휘청이고 있다. 잠시 잠깐 그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바이러스 때문에 일상사가 흔들리고 질서가 무너졌다. 한 사람의 확진자가 생기면 그 주변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감염이 되는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공포와 사람에 대한 의심이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급기야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내려지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는 것으로 최소한의 방어를 해야 했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고, 각종 행사도 줄줄이 취소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직장인들은 비대면 회의를 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이 섬처럼 고독해져 갔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피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글 쓰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그 시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시간이 많으니 글을 열심히 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글이 술술 써지는 건 아니었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사념이 느는 모양이다.
-시간은 넘쳐나는데 글이 안 써져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게 말했다. 뒤숭숭한 사회적 분위기가 그 원흉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찌하든 견디어내는 시간, 모든 일들이 꽁꽁 얼어붙었다.
출판시장도 얼어붙기는 다른 분야와 다를 바 없다. 내가 아는 출판사 대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면 책 보는 시간도 많아질 테니 오히려 출판시장은 호황이 될지도 모른다’고.
허나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으로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책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도서관도 문을 닫고, 서점도 문을 닫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지적 호기심을 어찌 풀었을까.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살아났다. 그것이 희망이 된다. 모두가 어렵지만 예술가들은 더욱 어렵다. 책도 안 팔리고 공연도 취소되고 강연도 줄줄이 취소다. ‘예술’로 먹고살기는 늘 어렵지만 이즈음의 예술가들은 최악의 상황이다.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다. 자발적인 선택들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대표의 말이 걱정되어 전화를 했다.
-그럼 당분간은 어떻게 되나요?
돌아온 답에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책은 내야죠. 준비하던 책, 다음 달에 두 권이나 나옵니다.
다행이다. 그래도, 출판사는 책을 내야 하고, 작가는 써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 멈추어버린 이 상황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중에도 36집이 탄생한다. 은둔의 시간에 대한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견디어야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을 믿는다. 어차피 견디어내야 하는 시간은 건너 뛸 수는 없는 시간이다. 작가가 창작을 멈출 수 없듯이.
『소설 21세기』 36집 목차
이서안 ‘소묘’
강이라 ‘에버랜드’
김옥곤 ‘싸리나무를 위한 에스키스’
정정화 ‘대숲에 깃들다’
이호상 ‘뒤바뀐 죽음의 페르소나’
권비영 ‘내가 죽기 전에’
김태환 ‘아라크네’
임은영 ‘야행’
류미연 ‘농담처럼’
이경숙 ‘새장을 열다’
<초대작가>
강인수 ‘안개 저편(6회)’ 마지막 회
* 글 : 『소설 21세기』2020 여름, 36호(울산소설가협회, 값 12,000원)에서
* 사진 : 소엽풍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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