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박송이 시 '화무'

김창집 2020. 8. 6. 15:24

 

화무 - 박송이

 

 

花無를 쓴다

꽃이 없다는 말

누구도 꽃이 아니라는 말

실은 누구도 꽃이라는 말

장미도 아니고 동백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모든 시절의

꽃을 쓰면서 꽃을 지운다

꽃은 저마다 다른 사정으로

누구는 이냥 피고 누구는 마냥 피고

누구는 그냥 피고 누구는 저냥 진다

그러기에 너도 나도

잘난 꽃도

못난 꽃도 아니다

내가 아는 진실은

피고 지는 꽃의 운명을

우리가 따라갈 거라는 거

망가지고 버려진 꽃들은

저가 꽃인 줄 모르고

낙담했을 것이다

떨어진 꽃을 줍는다

떨어지지 못한 자책으로

화선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붓을 들고 조문하는 날

우리는 꽃이 아니었기에

꽃이었다고

사라진 꽃들을

볼 수 없어서

花無를 쓴다

 

 

                                       *한국작가회의202078월 통권 126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