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2020년 11월 389호의 시(1)

김창집 2020. 11. 3. 22:27

 

[권두시]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가장 큰 잃음 임보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기도 하고

전쟁으로 한 나라를 잃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잃음이 무엇인 줄 아는가?

 

온 세상을 잃음이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죽음이다!

 

 

타래붓꽃 - 차영호

 

1

까꾸리개* 언덕 바람받이에서

까치발 뜨고 흔들리면서도

 

볼 깊은 우물 속

소용돌이에

헤적여

먹먹한 세상을 그려놓고

 

그리움

새살새살

눈물로 다시 솟아

 

속눈썹 내려 적시며

치마꼬리 배트는

 

 

2

아가야,

 

누굴 기다려

새초롬히

초저녁달 띄워 올리는 거니?

 

--

* 포항시 호미곶면 구만리 바닷가.

 

 

동자승, 달그림자 줍다 이소암

   - 동국사 목련

 

동국사* 뒷마당 죽순竹筍, 무심히 탑을 쌓고

 

바람 갈 길 가리키던 처마 끝 풍경風磬,

 

열사흘 달 물고 섰다

 

적요寂寥, 혹독한 가난을 들이는 일이다

 

달그림자 줍는 동자승 비구니가 허하다

 

--

*동국사 : 군산시 동국사길 16.

 

 

목련 마스크 김동헌

   - , 여의如意에서

 

어린이 공원 목련 가지마다

한 땀 한 땀 박음질하는

여의 손끝에서 마술 같이

목련, 마스크

 

상춘객들이 몰려올 거야

어서어서 서둘러야 해

닭이 울기 전에 피워 올린다

목련, 마스크

 

언론사들은 앞 다투어 꽃소식 전하고

마스크 두 장 구하기 위해

긴 목 뺀 생명줄

목련이 피워 올린 공원 안

 

전남 장흥 농부의 작은 빵집

텃밭 야채 바리바리 싸준 보따리

이웃들 들고 온 단호박 감주

그 마음 잊지 않고 잘 쓰겠다고

 

하얀 목련이 핀다

 

 

가을 한 점 - 洪海里

 

따끈따끈하고 바삭바삭한 햇볕이 나락에 코를 꿰어 있어도 투명하다

 

혼인 비행을 하고 있는 고추잠자리가 푸른 하늘을 업고 빙빙 돌고 있다

 

여름 내내 새끼들로 시끄럽던 새집들은 이미 헌집이 되어 텅텅 비었다

 

너른 들판이 열매들로 가슴이 탱탱하니 더 바랄 것 하나 없이 가득하다.

 

 

                 * 시 - 월간우리202011389호에서

                 * 사진 - 가을철 붉은 열매들 : 위로부터  화살나무, 가막살나무, 참회나무,

                                    사철나무, 덜꿩나무, 까마귀밥여름나무, 참빗살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