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내일을 여는 작가' 의 시(2)

김창집 2020. 10. 22. 00:04

기다리는 사람 - 최지인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위였다 그 사이 곰팡이가 슬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 등을 씻어 정리했다

 

   멀쩡해 보여도 이 집에는 곰팡이가 떠다녔다 넓은 집에 살면 베란다에 화분도 여러 개 놓고 고양이도 강아지도 키우고 싶다고 그러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하고 몇 년은 성실히 일해야 하는데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바란 거 이런 게 아니었는데

 

   키스를 하다가도 우리는 이런 생각에 빠졌다 그만할까 새벽이면 윗집에서 세탁기 소리가 났다 온종일 일하니까 빨래할 시간도 없었을 거야 출근할 때 양말이 없으면 곤란하잖아 원통이 빠르게 회전하고 물 흐르고 심장이 조용히 뛰었다

 

   암벽을 오르던 사람도 중간에 맥이 풀어지면 잠깐 쉬기도 한대 붙어만 있으면 괜찮아 우리에겐 구멍이 하나쯤 있고 그 구멍 속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다 보면 빛도 가느다란 선처럼 보일 테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어두워질 거라고

 

   우리는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뜻해지길 기다렸다

 

위로는 위로가 안 돼 - 김건영

 

   암이 전이되었다는 소식에 아버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위로할 방법이 없어 입을 닫고 있다가 미스터 트롯을 틀어 드렸다 아버지께서 웃으셨다 위로는 윗사람에게 어떻게 하는 거지 받는 사람은 받기만 해서 모른다

 

   실연당한 친구는 자꾸 울기만 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아서 소고기를 사주었다 먹다가 다시 울먹이며 친구가 말했다 이렇게 슬픈데 고기는 왜 맛있냐

 

   마음을 다해도 위로가 안 돼 어떤 충고는 고충이 된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거든 말없이 소고기를 사거나 세상을 위한 밧줄이나 될 것

 

   정말 말로는 안 되는 게 있다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무얼 하지 사실 무얼 해도 안 돼 하지 마 행복 추구권 말고 항복 추구권 이것은 파이트가 아니다 일방적 구타지 희망 고문이지 게임이 안 돼 게임이 현실에서 안 되니 게임이라도 하지 게임하는 애들 괴롭히지 마라

 

   나비처럼 벌어서 벌처럼 쓴다 그래도 집은 못 사 그래서 아이를 못 낳아 네 아이의 친구를 앗아갈 거야 위로가 안 되니 위로 한마디 하는 거지 뭐 위로는 아래로 해야지

 

   세계를 미워할 거면 날카롭게 미워하자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 우리 국민 하고 싶은 거 다 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의 아니무스 참고 버티기만 하면 뭐가 좋냐 아니 누가 좋냐고 말하면서 맛있는 것을 사 먹고 힘내야지 더 굵은 밧줄이 될 수 있도록

 

   그래도 지구는 돌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세상엔 아름다운 일이 좀 있을 거야(정말일까)

   그러니 이 시 비슷한 것을 빠져나오며 또 한 마디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만 벼리고 있구나

   벼린 시간이 우리를 단단하게 할 거야(정말로)

 

손과 입술 - 서재진

 

   아플지도 모르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거리에서 마스크 끼고 입을 맞추는 어른들을 봤다.

 

   생일파티에 가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균들을 피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정말 재미있을 텐데. 생일파티가 아니라 위로파티여도 좋겠다. 마스크를 쓰고 너는 창 안에서, 나는 창 밖에서 박수를 쳐줘도 좋겠다. 케이크를 자르고 장갑을 낀 채 접시에 옮겨 담아도 좋겠다.

 

   아기의 몸 속에도 들어갈 만큼의 작은 병균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아주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필요하겠다. 주사를 맞고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서는 사탕이 필요하겠다.

 

   아기가 운다. 엄마는 아기를 아기라고 부르는 나를 보며 웃었다.

 

   의사 선생님은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아기 손에 사탕을 쥐어줬다.

 

   마스크를 끼지 않고도 사탕을 주는 날이 올까요?

   사탕을 직접 입에 넣어주는 날도 올까요?

   밖에 다녀온 어른들이 꼬박꼬박 손을 씻는 날도 오겠죠?

   언제쯤 아기에게 뽀뽀해도 괜찮을까요?

 

   궁금한 게 많아서 머리가 이렇게 무겁냐고

   무릎베개를 해주며 엄마가 물었을 때가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병균은 없어.

   대답했을 때 엄마는 병균이 있어도 나를 사랑할 거라고 했다.

 

   아기는 누군가 사랑하면 생긴다던데, 그렇다면 바이러스도 누가 사랑해서 생긴 존재일까. 사랑해서 생긴 존재인데 뽀뽀하면 옮는다는 건 이상하다. 세상에 이상한 일이 많아, 사람들이 오늘도 줄서서 춤을 추러 가고 마스크를 내린 채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는 걸 봤다. 어쨌든 요즘은 사랑하면 병이 생기는 시대인가보다. 나는 사랑하는 걸 잠깐만 숨기기로 했다.

 

초록을 흠향하고 이소연

 

다들 집 밖으로 나가지 말자고 하였으나

문 없는 집은 없어서

나의 집이 먼저 나를 이끌고 외출하였다

 

집은 송장나무*를 찾아가 송장같이 지내는 법을 묻는다

꽃잎은 왜 아래만 바라보는 걸까?

개미는 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되돌아갈까?

 

나만 이러는 게 아니라서

비오는 날 우산을 챙긴 사람처럼 좋았다

굽 높은 신에도 바짓단이 젖고

 

얼굴을 들면 세상이 물에 잠겼다

 

()이 된다는 말을 좋아했다

서로의 반대쪽 손등을 부딪히며 걷는 일은

나도 아는 걸 너도 안다는 뜻이어서

말하지 않아도 숨이 차올랐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죽은 노루를 본 우리는

치워주고 갈까?”

아직 남아있는 온기를 치우며 슬퍼하고 있다고 믿는 우리는

나에게서 너를 구하려고 멀어질 때가 있었다

 

멀리서 사랑하는 일은

비처럼 그친다지

빗소리 들려?”

 

멈추지 못하는 호흡들, , , 발밑의 집들이 보인다

지붕, 지붕, 지붕, 없는 것들이 꿈틀거렸다

우리는 초록을 흠향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상장나무

 

 

                                *: 한국작가회의 내일을 여는 작가2020 하반기호

                                       기획 특집 질병, 이후의 문학에서

                                              *사진 : 사람주나무 단풍(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