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이상국 시 '겨울 추상화抽象畫'

김창집 2021. 1. 18. 12:28

겨울 추상화抽象畫 - 이상국

 

1

한번 떠나간 새벽은 돌아오지 않고

하늘에서 별은 피고 진다

추녀 끝에 돌을 베고 누운 잠,

깨어 있던 그대의 이목구비.

컴컴한 기침소리는 바람에 몰려다니고

외딴 마을에서 개가 짖는다.

저문 길을 데리고 당도하는 야행夜行의 끝 마을

어두운 뜨락에서

뿌리를 산발하고 부르는 교목喬木의 노래,

이 밤에 세상 밖에 따로 깨어

실은 목이 메는 그대의 노래.

 

2

그대 밤새워 부르는 노래가

그대 하나의 잠도 밝히지 못할 때

파블로 피카소여

당신의 세기적인 무지로도

저 추운 교목의 키를 낮추진 못한다.

어둠은 굴뚝보다 깊고

모든 길들이 바람이 되어 날리는 곳

한 해에도 키를 넘게 자라나는 슬픔의 숲에서

봉두난발의 사내가 어둠을 빗질하고 있다.

 

3

그대가 한 그루 나무로 서서

떠나간 풍경을 지키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나온 사내가 뜨락을 쓸고 있다.

실은 세상의 가장 아픈 곳을 쓸고 있다.

나귀는 건초를 씹으며 귀를 키우고

이 겨울 개들은 죽어서 그대의 자유自由처럼 쓰러져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일군의 까마귀떼 흩어지고 있다.

 

4

말에 자갈을 물리고

어둠의 성을 배회하는

필마,

야심한 강을 건너

죽음보다 견고한 문밖에서

며칠째 밤비가 그대

끝없는 노동을 적시고

이 밤에 구천을 나는 새의 후생이여,

잃어버린 들녘에 꽃이 피면

삐쩍 마른 사타구나 상한傷寒의 눈물을 잊지 말고 울어다오.

 

5

울어라 새여,

메마른 땅 죽은 나뭇가지에

차거운 봄비 뿌릴 때

오지의 늪 속에 뿌리는 깊고

어둠 속에서 모발은 자랐거니

이제 날이 풀리고 풀이 자라면

어느 미물이 울지 않겠느냐

울어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울어라 새여.

그대 등 하나 끄면

이 밤이 어둠만으로도 넉넉할 것을

생솔가지 꺾어 쓸던

마지막 하늘에서

울어라 새여.

 

6

불질러다오.

내륙의 겨울 어두운 길을 불질러다오.

밤바다를 달려온 흰 말굽에 밟혀

무지한 피도 깨고

그대 몫의 아픔이 빛이 되어 내릴 때

흐르는 물에 머리 감고

잊어다오.

면도자리 새파란 음모의 겨울에

그대 식탁에 오르던 마른 슬픔과

간밤에도 울던 쪽박새 울음,

첫 정월 매화 피면 어느 귀인이

손 없는 날 볕을 가려 오겠느냐만

조금 이따 날이 새고

해가 뜨는 쪽에서 누가 부르면

꽃의 피안彼岸에서 울고 있는 그대

수염을 밀고 나와 다오.

 

 

                                                * 산림문학2020년 겨울 제40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