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북로 상사화 - 김연미
너에게로 가는 길은 육차선 무단횡단
일방통행 같은 사랑 그 반쯤을 건너와
참았던 숨을 뱉는다 그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너무 빨리 왔나 잡초처럼 돋는 불안
건너야 할 남은 반이 주춤주춤 겁이 난다
이대로 돌아서버릴까 차들은 끊이질 않고
사랑에 목숨 걸 만큼 단순하진 않았는데
돌아갈 길이 없다 점이 된 화단 속
저 비난 경적 소리에 붉어지는 상사화
♧ 불면 - 김영란
늘어진 테이프 같은
하루 위에
또 하루
사랑이 모자라서
사랑이 더
아픈 걸까
치명적
눈빛에 갇혀
죽음을
입
맞추던
♧ 빗물을 대하는 방식 – 김영숙
어머니 집지슬에 성제추룩 모여 앉앙
세숫대야 낭푼이 헌 밥통에 돗도구리
지슷물 무사 데껴부느니 걸레 ᄈᆞᆯ곡 마당 씻곡
큰 그릇엔 퉁소 울고 작은 그릇 실로폰소리
하모니 멋진 악단 퓨전 연주 푹 빠졌다
해 반짝 날 좋아지면 하늘 쿰는 호수야
♧ 그 이가 흔들려도 – 김정숙
뭔가 감춘다는 건 멀어지는 증조다
끼니 끼니마다 말을 우물거리는
내 몸에 뿌리를 박아
내 몸 같은 몸 아닌 이
성질 죽여가면서 금붙이 씌웠어도
물불 가리지 않고 맞장구 쳐 주더니
“풍치는 유전입니다”
그 이와 이별처방
분홍 계곡에 핀 환상의 첫 짝꿍이었지
터진 실핏줄 견디는 일만 남았더라도
서로가 서롤 의지한 한 포기 안개꽃처럼
♧ 누가 묻는다면 - 김진숙
아침녘 안개 풀어 어제를 닦아내는
발밑 돌멩이에도 사무친 뼈가 있다는 말
제주 땅 어디에서나 흘려듣지 못해요
당신 몸 잠시 빌려 오늘을 살아가요
짙은 어둠을 찢고 일어서는 바람 따라
한라산 불의 말씀들 새겨듣곤 하지요
아흔아홉 골짜기로 흘러내린 피의 기억
물이 되고 흙이 되고 꽃이 되어 피었나니
설문대 그늘에 들어 내일을 파종해요
*계간『제주작가』 2020년 겨울(통권 71)호에서
*사진 : 제주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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