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제주작가' 2020년 겨울호의 시조(1)

김창집 2021. 1. 21. 12:48

연북로 상사화 - 김연미

 

너에게로 가는 길은 육차선 무단횡단

 

일방통행 같은 사랑 그 반쯤을 건너와

 

참았던 숨을 뱉는다 그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너무 빨리 왔나 잡초처럼 돋는 불안

 

건너야 할 남은 반이 주춤주춤 겁이 난다

 

이대로 돌아서버릴까 차들은 끊이질 않고

 

사랑에 목숨 걸 만큼 단순하진 않았는데

 

돌아갈 길이 없다 점이 된 화단 속

 

저 비난 경적 소리에 붉어지는 상사화

 

불면 - 김영란

 

늘어진 테이프 같은

하루 위에

또 하루

 

사랑이 모자라서

사랑이 더

아픈 걸까

 

치명적

눈빛에 갇혀

죽음을

맞추던

 

빗물을 대하는 방식 김영숙

 

어머니 집지슬에 성제추룩 모여 앉앙

 

세숫대야 낭푼이 헌 밥통에 돗도구리

 

지슷물 무사 데껴부느니 걸레 ᄈᆞᆯ곡 마당 씻곡

 

 

큰 그릇엔 퉁소 울고 작은 그릇 실로폰소리

 

하모니 멋진 악단 퓨전 연주 푹 빠졌다

 

해 반짝 날 좋아지면 하늘 쿰는 호수야

 

그 이가 흔들려도 김정숙

 

뭔가 감춘다는 건 멀어지는 증조다

끼니 끼니마다 말을 우물거리는

내 몸에 뿌리를 박아

내 몸 같은 몸 아닌 이

 

성질 죽여가면서 금붙이 씌웠어도

물불 가리지 않고 맞장구 쳐 주더니

풍치는 유전입니다

그 이와 이별처방

 

분홍 계곡에 핀 환상의 첫 짝꿍이었지

터진 실핏줄 견디는 일만 남았더라도

서로가 서롤 의지한 한 포기 안개꽃처럼

 

누가 묻는다면 - 김진숙

 

아침녘 안개 풀어 어제를 닦아내는

발밑 돌멩이에도 사무친 뼈가 있다는 말

제주 땅 어디에서나 흘려듣지 못해요

 

당신 몸 잠시 빌려 오늘을 살아가요

짙은 어둠을 찢고 일어서는 바람 따라

한라산 불의 말씀들 새겨듣곤 하지요

 

아흔아홉 골짜기로 흘러내린 피의 기억

물이 되고 흙이 되고 꽃이 되어 피었나니

설문대 그늘에 들어 내일을 파종해요

 

                                                *계간제주작가2020년 겨울(통권 71)호에서

                                                              *사진 : 제주수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