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2021년 2월호의 시(2)와 복수초

김창집 2021. 2. 10. 11:40

소 울음 값 강우현

 

청라 정육점 천장에 소 울음이 걸려 있다

풀을 먹고 살던 몸 반쪽이 하차한 종착역

 

주인의 발소리는 바람을 쌓아 바리케이드를 치고

부르고 싶은 이름을 눈물로 지우게 했다

 

마음만 천리만리 달아나다가

두려움이 섞인 오줌이 질질 끌려갔다

살려주세요, 음 살려주세요,

차창 밖으로 울음을 흔들었지만

잡풀만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젖은 눈망울 속으로 어제가 다녀가고

길이 지워지자

마중 나온 엄마는 고요를 품에 안고

달의 뒤편으로 날아갔다

 

기분 좋은 바람이 휘파람을 불면

등에서 만개하던 하얀 밥풀꽃

 

밭골사가 손에 힘을 빼고 꽃잎을 만지자

벽에 걸린 시침의 눈동자가 충혈되었을 뿐

 

바람의 시간을 통과한 목숨은 세상 거스를 줄 모르고

소 울음 값을 지불한 영수증이

갈고리에 걸려있다

 

목련 - 권수진

 

왜 그런 경우 있잖아요

정말로 보고 싶은 사람이 연락은 닿지 않고

애타게 기다리는 날들만 반복되다가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경우를 말이죠

내 생애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 지나갑니다

지난 밤바람에 맥없이 툭툭 떨어지는

꽃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거예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 당신을 위해 살아왔는지

나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영겁의 세월이

얼룩진 기억으로 바닥 위에 수북이 쌓입니다

간혹 저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말하죠

그동안 많이 아팠었니, 몰골이 말이 아니구나

바보처럼 속마음을 감출 수가 없군요

시련을 계기로 더욱 행복해진 사람들을 봅니다

나름대로 저마다 사연은 있겠지만

나로 인해 더 깊이 상처받는 사람들도 없어야겠죠

이렇게 계절은 또 말없이 지나가나 봅니다

아무런 약속이나 기약 없이 피고 지는

하얀 손을 당신에게 뻗으면 닿을 수 있을까요

늘 순결한 척하며 꽃잎 속에 숨겨 놓은

검은 속내를 모두 다 들켜버린 건 아닌가요

겉으로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

속은 문드러져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그런 흔한 경우가

 

슬픔의 가속 - 이 령

 

  나무들은 전력질주로 도망가고 구름은 집요하게 따라왔네. 울 걸 그랬어! 와디의 습관성 독백이 방울방울 차창에 맺히네. 오래된 고독이 자유낙하 하는 화답행 버스는 화답和答의 관성을 거부하네. 차라리 좀 더 확실하게 무너져 내릴 걸 그랬어! 맹목적 다짐들을 바짝 당겨와 내리는 폭우는 이곳의 흔하디흔한 풍경이네. 수시로 범람하는 와디, 그녀의 웃음은 근본 압축된 슬픔이네. 어디 한마디 말 건 낼 곳 없이 이별의 무게는 추억의 양에 비례하기에 와디, 그녀는 한동안 좀 더 젖을 요량이네. 몇 정거장을 놓친 악착보살 같은 와디의 눈물이 간벌된 가로수 길에 우두두둑 박히네. 예보도 없이 내리는 폭우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네. 반복된 우기는 건기를 부르네.

 

해피트리 키우기 - 김명옥

 

당신을 심어놓고

햇볕 좋아할까 싶어 창가에 내놓았더니

잎끝이 까맣게 얼룩진다

반그늘로 옮기고 수시로 상태를 살피는데도

아침에 들여다보면 누렇게 시든 잎사귀 수북하다

폭풍검색해서 분무기도 하고 영양제를 줘 봐도

새살은 쉽사리 돋아나지 않는 당신

 

행복의 최적화 조건은 무엇일까

생각 끝에 눅눅한 흙을 걷어내니

짓무른 생의 터럭들이 고개를 박고 있다

고분고분 물을 주었어도 흡수를 하지 못하면

잎이 바삭바삭 말라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신문지 위에 당신의 아랫도리를 펼쳐 놓는다

생이 길어야 아름다운가

여기도 좋고 다음 생으로 건너가도 그만이라는 듯

몇 가닥 햇살에 여생을 맡기고

선정에 드신 당신

바람의 숨소리만

으로 쌓여간다

 

늦은 귀가 - 오명현

 

막차는 떠나고

당산역 6번 출구 계단 복판에

구두 뒷굽 하나 홀로 있다

그걸 흘린 줄도 모르는 주인은 발을 내딛다가

오장육부가 철커덩 하고 놀랐으리라

힐끗, 딱 한 번 뒤돌아보고서는

을 냉큼 끊으리라, 작정했으리라

색 바랜 검정 뒷굽은 사람들에게 차이면서도

연을 끊는 찬 바람소리를 태연하게 들었으리라

주인은 놀라 은결든 육신 달래느라

인근 아파트로 잘뚝잘뚝, 아니면

닳을 것이 더는 없는 모양새로 봐서는

어둑한 원룸으로나 들어섰으리라

발뒤꿈치에 바람이 들고 겨울 빗물 스며들어서는

전에 앓던 가슴애피 도졌으리라

도졌으리라

 

 

                                       *시 : 월간 우리2021392(2월호)에서

                                       *사진 : 벌써 활짝 피어버린 복수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