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시조의 종가는 단시조랬다.
허랑방탕
여기까지는 왔다.
2021년 1월
오승철
♧ 다시, 봄
허랑방탕 봄 한철 꿩소리 흘려놓고
여름 가을 겨울을 묵언수행 중이다
날더러 푸른 이 허길 또 버티란 것이냐
♧ 누이
쇠똥이랴
그 냄새 폴폴 감아올린 새순이랴
목청이 푸른 장끼 게워내는 울음이랴
초파일 그리움 건너
더덕더덕 더덕밭
♧ 봄꿩
대놓고 대명천지에
고백 한 번 해 본다
오름 만한 고백을 오름에서 해 본다
갓 쪄낸 쇠머리떡에
콩 박히듯 꿩이 운다
♧ 봄날
붉은오름
아침놀
은숟갈 빛
산마을
상여 메듯
그것들을
떠메고 온
새 몇 마리
말좆이
늘어진 봄날
유채밭
흔들고 가네
♧ 차마고도
매일 아침 알약 몇 알 넘겨내는 내 식도
하늘에 내맡긴 길,
차마고도 같은 그 길
어디로 나를 이끄나 천형의 그리움아
♧ 어느 날 백수白水 선생
실로 모처럼 만에
안부 전화 드렸더니
“댁은 뉘시오?”
아차 하는 그 순간,
뒤이어 하시는 말씀
“라고 할 줄 알았지?
허허”
♧ 북돌아진오름
바다에 갇힌 섬보다
그나마 내가 낫네
역병 도는 이 가을날 눈치껏 오른 오름
북채를 들지 않아도
북이 먼저 울겠네
♧ 올레길 따라
암그령 수크령이 간들대는 대수산봉
그 품에 젖꼭지같이 무덤 한 채 얹혀있다
“누게고?”
선산도 짐짓
날 아는 숭 모르는 숭
*오승철 시조집 『길 하나 돌려세우고』(황금알, 202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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