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시대 – 오명현
코로나는 날씨다
날씨에게 하듯
날마다
스마트폰 앱으로 코로나에게 문안을 드린다
앱에 뜬 확진자 수가 확 늘면
평소보다 마스크 끈을 더욱 조여 매거나
한바탕 푸념을 내뱉고는
찌뿌둥한 채로 집에 머문다
앱에 뜬 확진자 수가 확 줄면
김치찌개 먹으러 미락촌에 들러도 될까
마스크 벗고 살 날이 오는 것일까 하고
설렌다
대기과학자 조천호는
날씨는 기분
기후는 성품이라 했는데
찌뿌둥하거나 설레는 기분 오락가락하다가
설마 코로나가 기후 되는 건 아닐까
♧ 거미집 - 전선용
평면의 골조는 체적이 없다는 것을,
줄 먹인 허공에 케이크처럼 잘린 구름이
지붕으로 상량했다
노을 한 다발에 족한 청빈의 동선
성글게 지은 가옥에 비 들이치고 꽃 질 때
납닥해지는 우산은 빌딩숲으로 졌다
서랍장을 열고 꽃무늬 풍경을 꺼내들면
창 여백에 걸렸던 산새 울어,
게으른 내 눈꺼풀 돛대같이 일어선다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을 와사 한 채
안부 없이 걸린 안녕에 체적 없는 빛은 평퍼짐해지고
거미 같은 인수봉, 그제야
하늘 오른다.
♧ 두 번째 이름 – 강우현
꽃잎이 또 추락했다
어제 흔들리던 꽃 그림자가 지워지고
경계가 무너진 꽃술의 적나라한 본색
자줏빛 드레스를 입던 그녀는
마약으로 들어갔다
꾹꾹 쟁였던 이브의 잇몸이 근지러워
바람의 등 뒤에 숨겼던 마음을 엎질렀다
곁눈질로 떠난 길마다 선택한 게으른 타협을
아니라고 아니라고 외치다
돌아갈 길이 지워진 절벽
아침을 기다리던 설렘의 뿌리가 이별에 닿아서
찰나를 위해서 버티던 찰나
지키고 싶은 꽃잎을 버렸다
가늠되지 않는 방향을 더듬어
가시나무새처럼 천 길 낭떠러지에 펼친 날개
엄마의 추억이 없는 그녀의 눈물이
바람 앞에서 눌러쓴 모자를 아무도 벗기지 않았다
이름 대신 새로 받은 46번
누군가 그녀의 두 번째 이름을 부른다
복중에도 싸락눈이 온다고 손을 비비며 웃던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 허공 경작지 - 김혜천
땅 한 뙈기 없다 하소하였더니
허공 경작지를 내어 주셨다
쓰나미도 덮쳤다 스러지고
토네이도도 일었다 잠드는 명당터
물의 시원
바람의 진원지
한 알의 물방울에 우주를 심고
한 줄기 바람으로 우주를 해체한다
충돌할수록 뻗어가는 뿌리줄기
끝없는 새로운 지평
이곳의 농경수는
혜천慧泉에 샘솟는 일급수
여름 들판 수직으로 내리는 사상의 푸른 비
구름은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꽃을 피우고
수억만 별들이
언어의 집을 짓는 천혜의 영토
무한 광대한 이곳으로
주소지를 옮기는데 반세기가 걸렸다
♧ 이석증 - 이 령
부산한 시절, 귀청 흥건하더니
마를 새 없이
다독일 새 없이
하마 출렁, 꽃 시절 다 폈다 졌는지
신령 오방색 펄럭이는 기도문처럼
꽃불 졌다 해도 남은 불씨는 마뜩해서
창궐 하는 소리族, 가탈 동거가 익숙하다
이 적막을 걷어내지 않고는
더 깊은 슬픔을 꽃 피울 수 없겠다
성긴 소리들이 이 구역을 범했다지만
내겐 아직 방생하지 못할 다짐들이 왁자하다
서룬 개화도 모조리 내 탓은 아닌데
내남없이 헐거운 소리가 멈출 듯 멈추지 않고
꽃 타래 길어 올리듯 부지런한 축복의 이 성聲은
하마하마 오늘을 밝히려 나를 점령하려는지
간데없이 내리는 살청殺靑의 소리, 소리들.
혼곤한 누수다
♧ 오죽 꽃 – 우정연
오죽헌에 꽃이 활짝 피었다
백년에 한번 필까 말까한 꽃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한 꽃
대나무 뜨락이 온통 꽃밭이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
꽃을 피운다는 대나무의 사랑 방식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꽃을 피우며
장엄하게 죽어간다
꽃을 피우고 죽어가는 일
평생 한 번만 사랑해야 하는 일이다
* 월간 『우리 詩』 2021년 02월 392호에서
* 사진 : 파피오페딜럼
오늘이 절기로는 우수(雨水)인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바람이 세게 불고 눈이 내린다.
아마도 꽃 시샘하는 추위 같다.
이런 날은 따뜻한 온실에 가서
이런 꽃이라도 보면 어떨까.
난초과에 속하는 식물로
열대나 아열대에 자라는 이 꽃은
꽃이 크고 두꺼우며
주걱턱 같은 주머니가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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