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수열 '휘파람'외 4편과 털괭이눈

김창집 2021. 2. 20. 12:11

휘파람

 

1

  코로나19로 학교 가지 못해 친구가 보고 싶다던 아홉 살 소년이 황망하게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일곱 사람에게 새 생명을 나누어 주고 하늘나라로 갔다 과자든 게임이든 친구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휘파람 부는 것을 유독 좋아 하던 소년에게 엄마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2

  내 아들로 태어나서 고마워

  엄마는 앞으로도 너를 사랑할 거고

  평생 기억하고 있을게

 

  멀리서 휘파람 소리 들리면

  네가 오는 거라 믿으며 살아갈게

  사랑하고 고마워

 

계속 밀고 가라

 

 도킨스 선생님께

 금요일에 결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편지를 씁니다

 친구들과 런던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행진에 참여해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기후변화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 청소년들의 등교 거부 파업은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어른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말괄량이 삐삐를 닮은 그레타 툰베리의 1인 시위에서 비롯되었다

 

 영국 총리는, 이는 시간 낭비고 학생은 공부가 우선이라 한 반면 프란체스코 교황은 삐삐와의 면담에서 계속 밀고 가라며 기도해 주었다

 

 삐삐는 노벨평화상 최연소 후보에 올랐고

 지금도 금요일이면 세계의 청소년들이 학교 대신 거리로 나서고 있다

 

나무와 의자

 

죽은 나무가 산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산 나무는 죽은 나무를 안쓰럽게 내려다본다

 

폭설경보 내린 눈발 흩뿌리는 겨울이었다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는 하얀 날이었다

 

무릎 비운 의자가 발등 부은 나무에 눈길 주는 동안

의자를 꿈꾸는 나무는 제 몸 뒤척여 마른 잎 하나

한때 나무였던 의자 무릎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입동

 

목 긴 가지 끝에

탐스런 홍시 대롱대롱 배달려

붉디붉게 익어갈 무렵

 

털신 신은 할아버지

징징대는 손자 놈 옆에 두고

장대 들고 까치발로 서서 허청허청

무서리 내려앉은 빈 하늘 휘젓고 있다

 

보다 못한 바람 한 줌

번번이 허공에 동그라미만 그리는

할아버지가 안쓰러운지

제 몸 뒤척여

까치밥 몇 개 남기고

떨어뜨려준다

 

조화弔花

 

 하얀 꽃의 목줄기를 쥐고 영정 앞에 선 검은 문상객들은 눈감고 목례를 한 다음 한 걸음 나아가 제단에 꽃머리 바치면서 앞으로 할까 뒤로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눈치껏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나 다시 고개 수그리면서 영정과 이별을 고한다

 

 꽃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

 

 

                                 *김수열 신작 시집 호모 마스크스(아시아, 2020)에서

 

* 사진 : 털괭이눈

 

털괭이눈은 장미목 범의귀과 괭이눈속 여러해살이 식물로

한라산, 지리산 및 함경북도의 깊은 산에서 자란다.

 

잎은 화경에서 마주나기 하고 엽병이 있으며

난상 원형 또는 거의 둥글지만

화경 밑부분이 잎은 산형이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불규칙하게 있다.

 

꽃은 5월에 피며 연한 황록색이고

길이 310cm의 꽃대 끝에 달리며

꽃받침조각은 4개로서 거의 둥글고 위를 향하며 밝은 황색이지만

꽃이 진 다음에는 녹색으로 되고 길이 23mm이다.

수술은 4개로서 꽃받침과 마주하기하며 보다 짧다.

 

심산지역 습지에서 자란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이 사진은 교래리에서 번영로 대흘교차로를 잇는 도로변

대천이오름 입구 조그만 내에서 찍은 것입니다.

제주에서는 기온이 온화해 12월 눈 속에서도 핍니다.